[도전 DNA 되살리자] "천편일률 '클래식 대중화' 벗어나고파"… 젊은 정통 클래식 연주자들 모임

입력 2018-05-21 05:01 수정 2018-05-26 08:41
클럽M은 지난해 7월 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1∼2층에는 관객이 거의 모두 차 성황리에 연주회를 마쳤다. 클럽M 제공
‘체임버(chamber) 피아니스트’ 김재원씨. 클럽M 제공
협주·반주 전문으로 활동하는 김재원씨가 만든 ‘클럽M’
‘클래식의 확장’을 목표로 대중과의 접점 찾으려 버스킹·뮤비 찍기 등 시도
“한때는 ‘솔로’ 꿈 키웠지만 이젠 반주 피아니스트에 대한 일반의 저평가도 깨고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클래식의 대중화가 꿈이에요”


높은 음(音)은 일찍 사라진다. 낮은 음은 좀 더 길게 남는다. 도레미파솔라시, 그리고 다시 도. 피아노 음들은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이 ‘모여’ 음악이 된다. 피아니스트 김재원(30)씨는 그 음과 음을 내는 악기가 좋았다고 했다.

끝이라 생각했는데 시작이었다

재원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전공자 치고는 늦은 편이다. 원래는 바이올린을 켰다. 아이였던 그의 몸은 어른의 그것으로 변해갈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몸에 맞춰 수백만원, 수천만원 하는 바이올린들을 매번 새로 데려가기엔 경제적으로 버거워보였다. 피아노는 그럴 일은 없었다. 재원씨는 피아노의 음도 좋았다.

재원씨는 예원학교, 서울예고를 졸업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갔다. 1학년 때는 선배들을 제치고 동아음악콩쿠르 1위를 수상했다. 외국에 나가지도, 유명한 선생님에게 배운 적도 없었다.

어떤 분야가 그렇지 않겠냐마는 클래식계는 유독 스타 연주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런 데다 산업 규모도 대중문화산업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다 보니, 재능은 있지만 무명의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설 자리는 줄어드는 상황이다.

그래서 “클래식계에서는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는 게 중요한데 그게 잘 안 됐다”고 재원씨는 말했다. 진전이 없자 언제인가부터는 “연주하는 것 자체가 싫어졌다”고 했다. 급기야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았던 4학년 때 한예종을 중퇴했다. 피아노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학교를 그만두는 대신 집에선 지원을 받지 않기로 부모님과 합의했다. 당장 돈벌이가 없어 클라리넷을 전공하는 친구의 반주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걸 본 친구의 선생님은 “이렇게 잘하는데 왜 그만두냐”며 “다른 클라리넷 전공 학생들을 소개해줄 테니 반주를 하면서 일단 돈이라도 벌라”고 했다. 끝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시작이었다.

클럽M… 음(音)의 모임

클래식계에선 홀로 연주하는 ‘솔로 피아니스트’가 더 인정받는다. 그는 돈벌이를 3년가량 해오며 주로 합주나 반주를 하는 ‘체임버(chamber music·실내악) 피아니스트’가 됐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상대적으로 ‘2등 연주가’인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재원씨에겐 다양한 연주가들과 함께 만날 기회였다. 그는 “여러 사람을 만났다. 악기만 잘 다루는 게 아니라 인성이나 가치관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연주하니 즐거웠다”고 했다. 돈벌이로 시작한 반주와 합주를 통해 다시 피아노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조성진처럼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실력도 뛰어나고 인간적으로도 매력 있는 연주가들과 모여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뜻을 슬쩍 내비친 적이 있다. 한 해에만 80회나 함께 연주한 비올리스트 이신규(33)씨와의 술자리에서였다. 최소한 5년 뒤쯤 하고 싶다고 했는데 신규씨는 “지금 바로 하자”고 했다.

하지만 재원씨는 거절했다. 신규씨는 “재원이가 부담스럽고 불안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음악계에서도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고, 해외에 자주 다니는 연주자들이 실제 모일지도 미지수였다. 또 그들에겐 특별한 일이 대중에게도 특별하게 보일 것인가 하는 불안함도 있었다. 재원씨 역시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일단은 제 자신이 실력에서든 명성에서든 혹은 사회적 위치나 경험에서든 더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신규씨는 재원씨를 설득했다. 충분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점, 5년 뒤엔 그만큼 나이가 들어 도전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 “실패한다 해도 그것 역시 배우는 과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클럽M을 만들었다. 재원씨는 클래식 연주팀에 ‘클럽’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대개는 ‘앙상블’이라거나 ‘프로젝트’가 붙는다고. 하지만 그는 “‘사람의 모임’ ‘사교조직’이라는 뜻이 있는 클럽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모은 사람들이 김재원(피아노), 조성현(플루트), 고관수(오보에), 김상윤(클라리넷), 유성권(바순), 김홍박(호른), 김덕우(바이올린), 이신규(비올라), 심준호(첼로)에 상주 작곡가 손일훈씨까지 총 10명이다.

M에는 다양한 뜻을 담았다. 음악(Music)하는 사람들이었고 전원이 남자(Men)였다. 공연을 하는 순간(Moment)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도 담았다.

음악의 확장

클럽M의 목표 혹은 도전은 ‘클래식의 확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클래식을 특정한 계층의 누군가만이 듣는 음악이 아니라 어느 계층의 누구나가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콩쿠르라는 경쟁에서 나온 음악이 아닌 여러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하는 음악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목표 중 하나인 클래식의 대중화는 이와 무관치 않다. 재원씨는 이미 클래식의 대중화가 수차례 시도돼 왔지만 제한된 범위에 머무르곤 했다고 한다. 그는 “기존에 시도됐던 방식은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 유명한 작곡가나 인기 있는 영화에 나오는 음악만 들려줬다”며 “그러다 보니 결국 대중화라는 것도 천편일률적인 연주가 반복되는 식이 돼 버렸다. 하지만 클래식에 그런 곡들만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클럽M은 대중들에겐 익숙지 않은 음악가들의 연주도 한다. 신규씨는 “최근에는 도흐나니 6중주를 연주했다. 대중들에겐 정말 잘 안 알려진 곡이고 저도 처음 연주해본 곡이었다”며 “그런데도 관객들의 반응이 가장 좋았다. 쉽게 들을 수 없는 곡을 발굴해 관객들에게 알리게 된 계기가 돼 뿌듯하다. 그런 곡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것도 하나의 목표”라고 말했다.

보다 다양한 클래식을 알리기 위해 이들은 무대에 서서 연주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획부터 홍보까지 무대를 만들어나가면서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채널을 운영하고 팀을 위한 로고를 제작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프로젝트 ‘다가가기’의 일환으로 무대를 벗어나 거리로 가 ‘버스킹’을 하기도 했다. 재원씨는 “관객들을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만나보고 싶었다”고 했다.

대중가요에서 주로 찍는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재원씨는 “금전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수백만원의 사비를 들여 찍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크리스마스 캐롤 음원을 내거나, 연주 전 티저 영상을 만들어 홍보에 나선다.

재원씨에겐 클럽M을 통해 이루고픈 개인적인 목표도 있다. 음악계에서는 ‘너는 솔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을 테니 반주나 해라’라는 식의 인식이 공공연하다. 그에게 조언을 구하러 오는 이들도 있었다. “독주는 어려울 테니 피아노로 돈이라도 벌려면 반주 쪽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며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오랜 기간 체임버 피아니스트 활동을 해오며 이러한 인식이 부당하다고 느껴왔다. 재원씨는 “반주든 솔로든 피아니스트는 피아니스트 그 자체”라며 “독주를 못한다고 반주를 하면 잘될 거란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체임버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의 또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오랜 기간 반주를 해오며 사람들과 ‘어울려’ 연주하는 법을 터득했다. 다른 사람의 음을 듣는 법, 혼자 튀지 않게 자신의 음을 조절하는 법, 그 과정에서 다른 연주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함께 연주하는 즐거움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수많은 음들이 모여 음악이 되듯, 그가 수차례 언급했던 ‘사람들의 모임’ ‘함께하는 음악’은 그러한 음악과도 맞닿아 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