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화 복귀·국채 탕감 요구 등 국정 프로그램 초안 언론에 유출
EU 패닉… 유럽 금융시장도 출렁
두 정당 “최종안엔 빠졌다” 부인 反EU 정서 공유… 가능성 배제 못해
지난 3월 총선 이후 두 달간 무정부 상태에 있던 이탈리아가 가까스로 연정을 구성하는가 싶더니 연정을 꾸리는 두 정당 ‘오성운동’과 ‘극우정당동맹’이 탈(脫)유럽연합(EU) 카드를 꺼내들면서 EU 당국과 금융시장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영국 BBC방송 등은 16일(현지시간) 연정협상 타결을 위한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두 정당이 국정과제 초안에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와 국가부채 탕감 등의 내용을 넣은 것이 알려지면서 이탈리아의 반(反)EU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전날 온라인 매체 허핑턴포스트는 EU 체제에 회의적인 오성운동과 극우정당동맹이 마련한 국정 프로그램 초안을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자료에 따르면 두 정당은 회원국의 유로존 탈퇴를 허용하는 경제적·법적 절차를 마련할 것을 EU에 제안하기로 했다. 또 유럽중앙은행(ECB)이 사들인 이탈리아 국채 2500억 유로(약 318조7000억원)에 대한 채무를 탕감해줄 것을 요구하기로 합의했다.
파장이 커지자 두 정당은 “초안에 실린 내용이 많이 바뀌었다. 유로존 탈퇴 내용은 최종안에 들어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탈EU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탈리아가 유로존에서 부채 수준이 가장 높은 국가인 데다 두 정당은 EU의 난민 분산수용 정책을 이탈리아가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발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극우정당동맹은 가능하면 유로존을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꾸준히 내비치면서 통화정책이나 난민 문제 등에서 EU와 맞서도록 오성운동을 압박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 연정이 EU에 남을 것인지 여부는 두 정당이 정치적 계산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마테오 살비니 극우정당동맹 대표는 유권자들이 악화된 경제사정 때문에 자신들에게 표를 던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지지자들이 이탈리아가 EU를 떠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다면 지금의 기조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예전의 리라화로 되돌아가거나 EU를 떠나는 것에 대해 대부분 이탈리아인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런던 소재 컨설팅업체 LC 매크로 어드바이저스의 로렌조 코도그노 연구원은 “공개된 초안은 그들의 본능적인 ‘장외(場外)성’과 정치적 미숙을 제대로 드러냈다”면서 “반체제 정부가 표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날 불가리아 소피아에 모인 EU 정상들은 이탈리아에 곧 들어설 새 정부가 갖는 의미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이탈리아는 EU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중 하나”라면서 “이탈리아 없이 EU는 완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금융시장 역시 유럽의 불안감을 반영했다. 이탈리아 대표 주가지수인 밀라노증시의 FTSE MIB 지수는 이날 2.32% 급락해 유럽에서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이탈리아와 독일 국채 10년물 스프레드(금리차)는 4개월 만에 최고치인 151bp(1.51%)까지 치솟았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이탈리아 포퓰리즘 연정, 유로존 탈퇴 검토”
입력 2018-05-18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