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남해에 가면 물건방조어부림(勿巾防潮魚付林)이라는 숲을 볼 수 있다. 삼동면 물건리 해안에 위치한 길이 1.5㎞ 너비 약 30m의 방풍림(防風林)이다. 지난 300여년 동안 거친 파도와 바람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고기를 모이게 하는 기능을 가진 이 숲은 1962년 천연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됐다.
일설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말 일본인들이 목총을 만들기 위해 이 숲에서 일곱 그루의 느티나무를 베어내려 했을 때 마을 사람들 전체가 들고일어나 “숲을 없애겠다면 차라리 우리를 죽여라”며 맞서서 숲을 보존할 수 있었다.
처음 남해 현지에서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 염해와 조수를 막아주는 방조림(防潮林), 물고기 떼를 모은다 하여 붙여진 어부림(魚付林)의 내력을 듣고 보는 순간 후손들을 생각해 숲을 처음 조성했던 조상들의 깊은 덕과 혜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탁월한 안목과 그 실천력에 감동할 뿐이다.
숲은 그 성격으로 보아 나무를 심는 세대와 유익을 보는 세대가 다르다. 여러 세대를 걸쳐 오늘의 위엄을 갖춘 숲으로 조성된 것을 볼 때 마치 믿음의 선조 노아가 홍수의 날을 대비해 묵묵히 방주 건조현장을 지켜내는 모습이 오버랩됐다. 오늘의 준비 없이 내일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없고, 오늘 투자 없이 내일 열매를 거둘 수 없는 법이다.
한국교회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는 후대를 위해 어떤 전략을 세워 실천하고 있는가. 한 지역교회가 적어도 5년, 10년 후를 바라보며 어떤 사역에 무게중심을 두고 진중하게 하나씩 이뤄 가고 있는가. 필자는 70년대 서울 내수동교회 대학부에서 청년 부흥의 현장을 경험했다. 이후 사랑의교회에서 젊은이와 주일학교 전체의 디렉터로 섬기는 은혜도 받았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본능적으로 다음세대(Next Generation)에 대한 부흥을 꿈꾸게 된다.
담임 목회자가 떠나고 7개월간 비어 있는 교회에 부임했을 때 문자 그대로 교회는 사분오열돼 늘 전운이 감돌았다. “주여, 새벽이슬 같은 대학 청년들을 보내 주소서. 어른들도 살리시고 주일학교도 살려 주소서.” 새벽마다 엎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전투와 전투를 치르는 과정을 경험한 후 수년이 지나 교회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회복됨과 동시에 주일학교와 젊은이 부서가 역동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대학부가 2개 부서, 청년부가 3개 부서로 부서마다 전임 사역자가 섬기는 규모 있는 공동체로 성장하게 됐다.
남들은 오늘의 모습만 보며 필자에게 비결을 물어온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아는 대로 비법은 없다. 그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원리가 있을 뿐이다. 첫째, 어른들이 싸우지 않는 것이다. 집안이 바로 서려면 자녀들에게 부모가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지사다. 궁궐에 살아도 싸움박질하는 집안은 미래가 없다. 초가삼간에 산다 할지라도 화목함이 넘치면 미래가 열린다.
한국교회 위상이 추락한 데는 사회 앞에서 죽어라 싸우는 목회자와 목회자, 목회자와 장로, 장로와 장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발호하는 이단 사이비들과도 싸워내기가 힘겨운데 아군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적전분열(敵前分裂)은 공멸을 불러온다. 기성세대가 싸우면 신세대는 더 이상 소망을 가지지 않는다.
둘째, 실제적이고 과감한 투자다. 혈육의 자녀들이 소중한 것처럼 신앙의 자녀들 또한 소중하다. 혈육의 자녀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처럼 믿음의 세대를 일으키기 위해 물적 인적 투자를 과감히 실행해야 한다. 필자의 교회에서는 교구 목회자와 주일학교 목회자에 대한 예우가 동일하다.
셋째, 가치 있는 일일수록 연대해야 한다. 다음세대를 세우는 것은 선택 과목이 아니다. 전공 필수과목이다. 교단과 지역교회, 선교단체와 지역교회, 지역교회와 지역교회가 마치 베드로와 바울이 복음 사역을 위해 굳게 손을 잡았던 것처럼 거룩한 연대를 이뤄야 한다. 서울을 비롯해 중앙에 위치한 규모 있는 교회들이 연대하는 데 선봉이 돼야 한다.
넷째, 소망을 튼실하게 가져야 한다. 오는 세대에 여러 가지 조짐이 좋지 않은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오아시스를 선물로 안겨주시는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다음세대의 부흥을 꿈꾸지 않는 사역자를 과연 주님과 복음, 교회의 사역자라 말할 수 있을까. 지금도 영적 방조어부림을 조성하기 위해 신실하게 사역하는 동역자들이 사역지 곳곳에서 치열하게 사명을 감당한다고 생각하니 위로가 된다.
오정호(새로남교회 목사)
[시온의 소리] 진정 다음세대를 꿈꾸고 있는가
입력 2018-05-18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