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비핵화, 볼턴 구상은… 우라늄 농축도 중단한 ‘92년 선언’

입력 2018-05-10 05:05
사진=AP뉴시스

핵물질 이동 금지하는 비확산 논의도 예고
폐기→보상 ‘리비아 방식’ 아닌 핵 폐기 해도 보상 없는 ‘남아공 방식’ 적용 제안도


존 볼턴(사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8일(현지시간) “이란 핵 협정 파기가 북한에 주는 메시지는 ‘미국이 더 이상 부적절한 합의는 수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이란 핵 협정 파기 이후 전개될 북한과의 핵 협상에서 강경한 자세로 나설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볼턴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이란 핵 협정 탈퇴 선언 직후 브리핑을 갖고 북한과의 핵 합의에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방침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 기본적 조건들을 제시했다.

그는 우선 북한에 대해 ‘1992년 남북 비핵화 선언’ 이행을 촉구했다. 그는 “북한은 핵연료 사이클의 전반기와 말기 모두 폐기해야 하고,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볼턴은 북한이 근본적으로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대표적인 강경론자다. 그가 1992년 비핵화 선언을 끄집어낸 것은 북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반영한다. 북한이 과거에 한 비핵화 약속부터 이행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볼턴은 또 북·미 정상회담에서 핵물질의 이동을 금지하는 비확산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비확산을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며 “이란 핵 합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북한의 핵 개발도 저지해야 하지만 북한의 핵 기술이 중동이나 테러집단에 넘어가는 상황을 극도로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의 핵 개발에 북한이 상당 부분 관여하고 지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관철하려는 중요한 이유가 북한의 핵 개발을 방치할 경우 미국이 추진하는 전 세계적인 핵 비확산 정책이 무너진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만일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결렬되면 미국은 비확산 위반을 이유로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한층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한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재개하면서 비확산과 연계할 경우 북한에 불똥이 튈 수도 있다.

이날 브리핑과 별도로 볼턴은 최근 북한의 핵 폐기 방식과 관련해 그동안 자신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리비아 방식 대신 남아공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비아 방식은 ‘선(先) 폐기, 후(後) 보상’ 수순으로 핵 폐기가 이뤄졌지만 남아공 방식은 핵 폐기 후 아무런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이 핵 폐기를 하더라도 경제적 지원은 한국과 일본, 중국 등에 맡기고 미국은 빠지겠다는 뜻이다.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진짜 협상(real deal)”이라고 강조했다. 이란 핵 합의 수준을 넘어서는 협상과 합의를 북한에 요구한다는 의미다. 다만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비핵화 합의를 이룰 수 있다고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