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초월과 추월

입력 2018-04-06 00:01 수정 2020-07-27 14:32

1956년 봄 인천 제물포고등학교의 길영희 교장 선생님은 무감독 시험을 제안하셨다. 모두들 불가능한 일이라고 반대했지만 유별난 교장 선생님은 실행했다. 평소 10명 정도의 낙제생이 나오곤 했는데, 무감독 시험을 실시했는데도 놀랍게 10명의 낙제생이 나왔다.

이에 감격한 교장 선생님은 낙제생들에게 ‘제물포고등학교의 양심’이라며 장학금까지 지급하셨다. 그 칭찬을 통해 그들은 악한 방법으로 세상을 추월하기보다 선함과 온전함으로 세상을 선도하는 인물이 되었으리라.

초대교회 출범 이후 기독교의 참된 신앙은 거짓 신앙과 싸우며 성장했다. 종교개혁은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모습이 ‘프로테스트(protest)’임을 말한다. 그것은 깨어서 거짓 가르침, 곧 이단과 사교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죄로 물들지 않도록 돌아봄을 의미한다. 싸워야 할 것과 싸우지 않는 것은 불신앙과 다름없다.

불신앙의 특징은 ‘초월’이 아닌 ‘추월’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그 결정판이 4년 전 일어난 세월호 참사다. 세월호의 세월은 세상을 초월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배후로 지목된 이들은 대다수 ‘구원파’를 신봉했다. 그러면서 편법을 일삼고 화물을 더 싣기 위해 배의 균형을 유지해 주는 평형수까지 내다버렸다. 그것은 신앙이 아닌 욕망이고, 초월이 아닌 추월이다. 교주와 교파의 이익과 안위를 위해 사람을 희생시켰고, 선으로 세상을 초월하기보다 악으로 세상을 추월했다.

오늘 우리 앞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두 가지 방식이 놓여 있다. 세상과 다르게 살아 세상을 초월하는 방식과 세상과 다름없이 살며 세상을 추월하는 방식이다. 바른 길로 서울을 갈 수도 있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로 가는 천국은 가짜다. 모로 갈 수 있다고 말하는 구원은 사기다.

지옥에 떨어진 어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간구했다. 천국에 있는 나사로를 그의 집에 보내어 증언하게 해달라고. 그러나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에게 듣지 아니하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듣지 않으리라”고 답한다. 모세와 선지자란 곧 성경 말씀을 뜻한다. 부자는 구원도 추월하고자 하지만 말씀이 이르는 대로 바르게 사는 것 이상은 없다. 초월이 아닌 추월로는 천국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아끼던 벼루를 깨뜨렸다. 정직하게 아뢰고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맞았다. 하인들이 “아니 우리가 했다고 하시지 왜 스스로 했다고 해서 이 상처를 입습니까”라고 하자, 어린 안중근은 “다리는 아프다마는 마음은 편하구나”라고 했다.

다리 아프지 않는 길이 추월이라면, 아픈 다리로 걷는 것은 초월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은 초월보다 추월을 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하고 세상을 욕망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 사람들의 생활과는 달라야 한다. 바른 신앙은 낮은 자리에서 겸손과 섬김으로 세속과 다르게 살아감으로써 세상을 초월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은 초월이다. 그는 하나님과 같은 분이셨지만 자신을 낮춰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다. 그리고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인간의 죄를 슬퍼하며 저들의 죄를 사하여 줄 것을 기도한 주님은 사랑으로 세상을 초월하셨다. 십자가의 사랑보다 더 참된 초월이 있을까. 죽음을 넘어선 생명의 부활보다 더 위대한 초월이 있을까.

박노훈 (신촌성결교회 목사)

[기독교복음침례회 관련 기사에 대한 반론보도문]
본지는 2018년 4월 6일자 ‘[시온의 소리] 초월과 추월’ 제하의 기사에서 “세월호 참사 배후로 지목된 이들은 대다수 구원파를 신봉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기독교복음침례회 측은, 기독교복음침례회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검찰 수사나 특별조사위원회 등 어디서도 밝혀진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서울남부지방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