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렸다. 제주 4·3사건은 우리 민족사의 비극이다. 좌우 이념 대결로 시작돼 7년7개월 동안 당시 제주 인구의 10%가량인 약 3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념 대결로 인해 이념과 아무런 상관 없는 어린이들을 비롯해 수많은 무고한 양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진상규명 등을 둘러싸고 논란만 가중되고 있다. 그래서 4·3은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4·3특별법 제정,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구성, 4·3평화공원 조성, 국가 추념일 지정 등의 조치들이 취해졌지만 정치권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이념 대립으로 인해 진상규명은 물론 진정한 치유와 화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4·3에 대한 성격 규정을 놓고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의 진상보고서는 ‘1947년 3월 1일 관덕정 앞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를 거쳐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 전역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립적 의미의 ‘사건’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진보 진영에서는 ‘항쟁’으로, 보수 진영에서는 ‘폭동’으로 맞서고 있는 바람에 사회적으로 합의된 이름을 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4·3평화공원에는 화강암 재질의 ‘백비’(비문 없는 비석)가 누워 있다. 2008년 공원 준공과 함께 설치된 길이 3m, 너비 90㎝, 높이 50㎝의 이 백비는 4·3의 정명(正名), 즉 올바른 이름을 찾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념 대결이 계속되는 한 이 백비에 이름이 새겨지기는 한동안 어려울 것이다.
정파 간 시각차도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념식에 참석해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다”며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 드린다”고 언급했다. 반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남로당 좌익폭동에 희생된 제주 양민들”이라고 말했다. 양민들의 희생 원인을 놓고 국가폭력과 좌익폭동이라는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이나 좌익에 의해 희생된 사람 모두 피해자다.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역시 불행한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 속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번 추념식 주제는 ‘슬픔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내일로’였다. 내일로 나가는 것은 좌우를 떠나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산자들이 서로 손을 잡는 데서 시작된다. 그래야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은 물론 치유와 화합이 가능하다.
[사설] 4·3 사건 70주년… 치유와 화해로 나아가자
입력 2018-04-04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