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정말 이렇게밖에 플레이 못하겠어?”
IBK기업은행은 지난 21일 V리그 여자부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현대건설을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꺾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올해로 6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밟아 챔피언결정전의 ‘단골손님’임을 입증했다.
하지만 이정철 감독은 이날도 코트에서 약속된 플레이가 나오지 않을 때마다 선수들에게 쩌렁쩌렁 울리며 호통을 치곤했다. 이는 기업은행 경기 때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아무리 경기를 잘 풀어가도 선수들이 집중력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어김없이 이 감독의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지기 일쑤다.
외국인 선수도 이 감독에게는 예외가 아니다. 주포 메디는 지난 시즌 한국 무대를 밟은 V리그 2년차다. 첫 시즌엔 이 감독의 호통에 “어렵다”고 고개를 내젓기 일쑤였다. 올 시즌엔 이 감독의 지도와 한국 배구에 적응하면서 정규리그 공격종합 1위에 오르는 등 한층 성숙한 기량을 보여줬다. 현대건설과의 플레이오프 3경기에서는 87점으로 압도적인 공격력을 뽐내기도 했다.
잘나가는 팀을 이끌면서도 채찍질을 그치지 않는 이 감독에게는 ‘호통 리더십’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최근 프로 스포츠계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어울리는 ‘형님 리더십’ ‘삼촌 리더십’이 대세를 이루는 것과는 상반된다. 하지만 이 감독은 사적인 인연이나 이름값에 연연하지 않고 정확한 잣대로 선수들의 기강해이를 바로잡으며 결국에는 ‘어차피 챔피언결정전은 기업은행’이라는 말을 증명하곤 한다. 스타일이 구식이라고 비판하는 배구계 인사들조차 매번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이 감독의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디펜딩 챔피언’ 기업은행은 올 시즌 유독 선수 이적이 많아 우려를 샀다. 세터 김사니가 은퇴했고, 레프트 박정아(한국도로공사)와 리베로 남지연(흥국생명) 센터 김유리(GS칼텍스) 등이 이적했다. 대신 레프트 고예림, 센터 김수지, 세터 염혜선 등을 데려와 전력을 보강했다. 시즌 중 레프트 최수빈을 영입해 노란과 함께 더블 리베로 체제를 구축했다.
각 포지션의 얼굴들이 바뀌면 흔들리곤 하지만 2010년부터 기업은행 지휘봉을 잡은 이 감독은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감독은 올 시즌 새로 영입한 선수들의 성향을 재빨리 파악하고, 팀 장악에 나섰다. 혹독한 훈련과 효율적인 선수 구성, 강력한 카리스마로 기업은행을 단기간에 결속시켰다.
이 감독의 눈은 통산 4번째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향해 있다. 그는 플레이오프를 마친 뒤 “챔피언결정전이 열리는 경북 김천으로 갈 생각에 이미 짐을 다 싸왔다”고 말했다. 챔피언결정전 상대는 한국도로공사. 정규리그 상대전적은 3승 3패로 백중지세다. 하지만 2014-2015 시즌 도로공사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3연승으로 정상에 오른 좋은 기억이 있다. 이 감독의 호통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휘할지 지켜보는 것도 이번 챔피언결정전의 묘미가 될 듯하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이정철 감독 ‘호통 리더십’ 빛났다… 6시즌째 결정전 진출
입력 2018-03-22 19:56 수정 2018-03-22 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