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관장이기 전에 사진작가예요. 18년 동안 전시는 안했지만 한번도 사진작가 아닌 적이 없었습니다.”
송영숙(70·사진) 한미사진미술관장이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에 위치한 미술관에서 개인전 ‘메디테이션(명상)’전을 갖고 있다. 2002년 미술관 개관 이래 운영자로 완전히 돌아선 줄 알았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올림픽공원이 내려다보이는 한미약품 빌딩 19층 미술관 옆 집무실에서 12일 그를 만났다. 한미약품 임성기 회장의 아내인 그는 가현문화재단 이사장이기도 하다.
그는 숙명여대 교육학과 출신이다. 4년제 대학에 사진학과가 없어 사진동호회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학교에 갔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영부인이 되기 전 사진기자를 했다는 뉴스를 접한 1966년 사진에 빠졌다. 그는 “핸드백 대신 카메라를 메고 다닌 여대생이었다”고 회상했다. 졸업 후 사진작가가 됐다. 개인전 경력만 7차례다.
마지막 2000년 개인전이 인생을 바꿨다. 도록에 서문을 써달라고 찾아간 이경성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부터 “사진을 할 게 아니라 한국에 사진 전문 미술관을 빨리 만들라”는 권유를 받은 것이다. 2년을 동분서주한 끝에 한국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이 탄생했다. 공무원들이 사진을 미술작품으로 생각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 오죽 힘들었겠냐고 했다.
“10년이면 미술관 세팅이 끝나 작가로 다시 출발할 수 있을 줄 알았다”는 그는 “그런데 일이 하도 많고 재밌다 보니”라며 배시시 웃었다.
창작 욕구는 국내외 출장 때 틈틈이 사진을 찍으며 풀었다. 그 순간이 ‘명상’의 시간이었다. 꽃 하늘 바다 등 풍경은 몽환적으로 흐려져 시 같기도 하고, 특정 부분은 오려내듯 확대해 추상화 같기도 하다. 작품마다 ‘보스턴’ ‘이스탄불’ ‘강진’ 등의 제목이 있는데, 이는 그가 작품을 찍은 장소들이다.
관장으로 있으면서 전시 열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도 ‘갑자기 웬 사진작가냐’며 보내는 곱지 않은 시선을 느낀다. “기업가 마누라니까. (제가 개인전 하는 게) 편치 않은 면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좌우명이 ‘나대지마라’예요.”(웃음)
미술관을 하면서 해온 일은 외국에서 먼저 알아줬다. 지난해 11월 한국 사진의 국제화를 이끈 업적을 평가받아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훈장 슈발리에장을 받은 것이다.
사립미술관이지만 재단 산하에 아카데미 연구소 출판사도 갖추고 있다. 전시뿐 아니라 출판 연구 컬렉션 등 폭넓은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컬렉션은 사진역사에서 획을 그은 중요한 작품을 두루 갖추며 8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고종 초상 사진이 그런 예이다. 사진 여명기인 1841년 영국 사진가 윌리엄 헨리 폭스 탈보트의 작품도 있다. 우표 딱지만한 크기가 1억1000만원이나 한다. 미술관 재정으론 어려워 자비로 사서 기증했다.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 한미사진미술관은 이전을 고민 중이다. 송 관장은 “방대한 소장품 관리 때문에라도 삼청동에 물색 중인 부지로 이전을 해야 할 판”이라며 새 시대를 예고했다. 전시는 오는 4월 7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송영숙 한미사진미술관장 “난 기업가 마누라·관장이기 전에 작가”
입력 2018-03-12 2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