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방송 프로그램에 ‘9·11을 예견한 남자’라는 사연이 소개됐다. 뉴욕 국제무역센터에 입주한 금융회사 모건스탠리의 보안 책임자 릭 레스콜라가 평소 테러 위험을 대비해 온 결과 9·11테러 당시 2687명의 임직원과 250명의 방문객 목숨을 구한 사연이다. 그는 국제무역센터가 미국을 대표하는 건물이기 때문에 테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을 했다. 재난 대비 매뉴얼을 만들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대피훈련도 했다. 일부 직원들이 못마땅해 했지만 재난 대비 훈련을 지속해 나갔다. 이 훈련 덕분에 당시 건물이 무너지기 전 직원들은 대부분 밖으로 대피할 수 있었다. 귀찮고 불편했던 재난 대비 훈련이었지만 관리자의 의지와 실천으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는 소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위험에 대비하는 것은 예방이 최선이다. 그러나 자연재난은 물론 작은 부주의로 인한 화재 사고 등을 막아 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재난을 대비하는 훈련, 재난 발생 시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 이를 위한 법과 제도의 개선 등이 필요하다. 헌법 제34조에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최근 발생한 제천과 밀양의 화재를 계기로 정부는 더 이상 대형 화재로 인해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지 않도록 화재 안전에 대한 근본적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앞으로 화재 안전에 대한 현황부터 철저히 진단해 법과 제도를 바꾸고, 시행 과정까지 철저하게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소방청은 또 육상 재난 대응 총괄 기관으로서 재난 대응 시스템 개선을 위한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부터 24시간 재난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상황 발생 시 신속한 출동과 유관기관 지원 등 재난 대응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할 소방청 지휘작전실을 운영하고 있다. 시·도에서 자체 대응이 어려운 재난 상황을 가정한 국가 차원의 재난 대비 훈련도 처음 실시된다.
소방력 출동 방식도 개선된다. 재난 상황에 따라 인력과 장비를 단계적으로 추가하는 상향식 출동 방식에서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경우 초기부터 집중 투입하는 하향식 출동 방식으로 운영한다. 소방서장 등 현장 지휘관에 대한 교육훈련도 강화한다. 재난 현장에서는 지휘관의 역량에 따라 재난 대응의 성패가 판가름나는 경우가 많다. 전국 8개 권역에 첨단 시뮬레이션 시설을 갖춘 지휘역량강화센터를 설치해 현장에 강한 지휘관을 양성할 계획이다. 지역 재난 대응 기관 간 협업체계도 강화된다. 실무자 중심이던 유관기관 협력체계를 소방서장과 재난 관련 기관장으로 격상해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긴급구조 지원 기관 평가에 전문가가 참여해 지원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도 공개할 계획이다.
재난에 대비하며 훈련 현장에서 흘리는 땀만이 재난으로부터 국민들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재난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것이 불편하고 귀찮을지 모르지만 모건스탠리의 보안 책임자 릭 레스콜라가 보여준 유비무환의 교훈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이것만이 재난에 대처하는 소방의 다짐이며, 국민들께 드리는 약속이다.
조종묵 소방청장
[기고-조종묵] 평소 훈련이 주는 교훈
입력 2018-03-02 17:35 수정 2018-03-02 2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