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올드시티(구 시가지)는 1500년대 중반 재건된 높이 약 10m, 길이 약 4㎞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올드시티 중앙의 ‘비아 카르도(Via Cardo)’란 이름의 교차로는 성벽 안을 4구역(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아르메니안 정교회)으로 나눈다. 그 중 기독교 구역 안에 세워진 성묘교회(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는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꽃’으로 꼽힌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골고다(Golgotha) 언덕과 그의 분묘(墳墓)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메시아 죽음과 부활을 마주하는 곳
지난달 16일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 성지순례단과 이곳을 찾았다. 안내자 김형욱(가명) 선교사는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에 의해 326년에 세워진 교회는 4세기부터 중요한 순례지였다”며 “페르시아군의 침공 등으로 파괴와 재건, 보수를 반복하다 십자군시대에 지금 교회 모습을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교회 안에는 ‘고난의 길’로 불리는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주요 14개 지점 중 마지막 5개 지점이 모여 있다. 뾰족한 아치형 입구를 지나자마자 향유인 나드(Nard) 냄새가 진동했다. 오른쪽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건축된 돌계단엔 순례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예수가 달린 십자가가 박혔던 골고다 바위로 향하는 계단이었다.
계단은 좁고 가팔랐다. 잠시 후 2000년 전 처형장의 상징이었을 바위가 눈앞에 나타났다. 가운데가 움푹 파인 바위는 두개골을 연상시켰다. 동행한 신성욱(아세아연합신학대 설교학) 교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가상칠언하신 뒤 운명했을 때 천둥번개가 치며 지진이 일어났는데 그 때 바위가 갈라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바위 왼편엔 제단과 십자가에 달린 예수 형상이 순례객을 맞고 있었다. 한편에선 단체 순례객이 찬양 ‘주 달려 죽은 십자가’를 허밍으로 부르며 순서를 기다렸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 멸시와 조롱을 당하며 죽어갔던 현장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이들이 감사와 눈물로 참배하는 영광의 현장이 됐다.
아래층으로 다시 걸음을 옮기자 사람 하나 누일 수 있을만한 석판을 둘러싸고 한 무리가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는 모습이 펼쳐졌다. 예수의 시신을 누이고 염(殮)을 한 후 세마포로 싼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고난을 향한 숭고함에 가슴이 먹먹한 듯 순례객들의 다문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부활, 신화 아닌 역사적 사실
비아 돌로로사의 마지막 지점인 예수의 무덤은 대리석으로 세워진 작은 경당(Edicule) 내에 위치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예수의 부활을 알렸다는 ‘천사의 방’이 있고 작은 입구로 한 번 더 들어가면 세 사람 정도가 서 있을 수 있는 작은 방이 나온다. 이 방에 있는 성인 무릎 높이의 단이 예수의 무덤 자리다.
무덤 앞에 선 소강석 목사는 “일각에선 예수님의 시체를 누군가 가져갔을 것이란 ‘도적설’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몸을 둘러쌌던 세마포와 수건만 따로 두고 시체만 가져가는 건 더욱 불가능한 일”이라며 “당시 유대 장례문화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비어있는 무덤을 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곳은 비어있는 무덤으로 보이지만 빈 무덤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부활의 증거가 가득한 공간”이라며 “모든 크리스천들이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가 서려있는 현장”이라고 덧붙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과학적·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미스터리다. 하지만 잇따라 드러나는 고증학적 발견과 기록들은 메시아의 부활을 사실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1세기 당시 역사가이자 정치가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가 저서 ‘유대고대사’에서 예수의 죽음에 대해 성경과 똑같이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3일 만에 그들에게 다시 나타났고 그가 살아났다고 말했다. 그는 메시아였다.’(유대고대사 18권 63∼64) 예수의 신성을 믿지 않는 유대의 역사가가 예수의 부활을 그의 저서에 명확하게 기록한 것이다.
지난해 11월엔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이 “예수의 무덤 주변 석회암 표면과 무덤을 덮고 있던 대리석 석판 사이의 회반죽 표본을 채집해 측정한 결과 345년쯤인 로마시대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교회가 처음 세워진 콘스탄티누스 황제 재위시기(306∼337)에 대한 기록과 일치하는 것이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발굴과 연구는 인류가 예수를 향해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 이야기가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던 배경은 ‘십자가 구원과 사랑’이란 본질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지 이스라엘을 찾는 전 세계 순례객들은 지금도 예수가 걸었던 길을 걸으며 십자가의 능력을 확인하고 있다.
폐쇄됐던 성묘교회 재개관
한편 지난 25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세금정책에 반발해 문을 닫았던 성묘교회는 이스라엘 당국이 한발 물러나면서 28일 다시 문을 열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총리실은 성명을 통해 “예루살렘 내 교회에 세금을 더 부과하는 조치를 보류하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팀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앞서 현지 기독교 단체들은 이스라엘정부가 예루살렘 내 교회 재산에 세금을 더 부과하려 하자 “기독교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라고 비판하면서 성묘교회 문을 닫았다.
예루살렘=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찾아서] ‘십자가 고난’ 현장서 인류 구원과 사랑 눈으로 확인
입력 2018-03-01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