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화두는 적게 일하기
장시간 노동 감시하는
특별팀 만들어 단속 나서
과로자살 등 잇따르자
근로방식 개혁 위해 노력
지난 22일 일본의 대표적인 민영 지상파 방송사인 TBS는 직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시켜 노동기준감독서로부터 시정권고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프로그램 제작부 직원 10명에 대해 노사 협정의 특별조항으로 정해진 월 80시간을 넘겨 시간외노동을 시킨 것과 1년에 6번을 넘겨 월 45시간 이상의 시간외노동을 시킨 것이 권고대상이 됐다. TBS는 “시정권고를 받아들여 ‘근로방식 개혁’을 한층 추진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일본에서는 전국의 수많은 기업, 병원, 학교 등이 후생노동성 소속의 지역 노동기준감독서로부터 장시간 노동으로 시정권고를 받는 경우가 줄을 이었다. 후생노동성은 지난해 1월부터 시간외노동 상한선을 월 100시간에서 80시간으로 낮췄다. 이후 80시간을 초과하거나 연간 2개 사업장에서 10명 이상 또는 4분의 1 이상의 직원이 ‘불법 장시간 근로’를 한 것으로 확인됐을 때 기업명을 공개하도록 했다. 과로사 및 과로자살 등 과로로 인한 산재가 발생했을 때도 이름이 공개된다. 이와 관련해 직원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기업을 뜻하는 ‘블랙 기업’과 그 반대인 ‘화이트 기업’ 리스트가 발표되기도 했다.
일본에서 이런 근로방식 개혁에 불을 붙인 것은 2015년 12월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쓰의 20대 여성 신입사원 다카하시 마쓰리의 과로자살이다. 이 사건은 이듬해 9월 딸의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은 다카하시의 가족이 한 달 뒤 언론에 알리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공교롭게도 다카하시 가족의 기자회견이 열린 날 후생노동성이 첫 ‘과로사 방지대책 백서’를 발표하면서 근로방식 개혁은 일본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사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경제 활성화의 일환으로 2015년부터 근로방식 개혁을 추진해 왔다. 생산성을 높여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근무시간 단축, 재택·유연 근무 등 근로방식을 개선해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2016년 기준 취업자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1713시간이다. 회원국 35개국을 대상으로 한 순위에서 18위였다. 그리고 일본생산성본부가 OECD 통계를 바탕으로 산출한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40달러로 20위였다. 주요 선진국들 가운데 일본이 최하위다. 한국은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2069시간으로 2위,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33.2달러로 31위다.
아베 정부는 근로방식 개혁에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새해 들어 불법 장시간 노동의 감독과 노동 관련 법제 마련 등을 담당하는 특별팀을 전국 노동기준감독서 321곳에 신설키로 했다. 특히 후생노동성은 올해 의회에서 시간외노동에 대한 기업 처벌과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골자로 한 근로방식 개혁 관련법 입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근로방식 개혁은 만만치 않다. 벌써 입법의 핵심 현안인 동일노동 동일임금 시행시기가 원래 계획보다 1년 연기될 예정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5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은 2020년 4월, 중소기업은 2021년 4월부터 시행되게 된다. 아울러 중소기업에 대한 잔업시간 규제도 예정보다 1년 미뤄져 2020년 4월부터 시행된다. 노사 협상이나 취업규칙 변경 등 제도 정비를 위한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시행을 유예해 달라는 기업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글=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아베 ‘과로와의 전쟁’
입력 2018-01-26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