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성규] 내부개혁 외치면서… 거꾸로 가는 김상조

입력 2018-01-23 18:19

공정거래위원회 가습기 살균제 재조사 사건의 주심을 맡고 있던 채규하 상임위원은 23일 사무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무처장은 공정위 조사 업무를 총괄한다. 유무죄를 판단해야 할 판사에서 하루아침에 유죄를 입증해야 하는 검사로 변신한 셈이다. 1심 재판 기능을 가진 공정위는 재판의 독립성을 위해 상임위원을 3년 임기제로 법에 규정했지만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채 상임위원을 1년 만에 사무처 소속 공무원으로 복귀시켰다. 김 위원장은 후임 상임위원으로 장덕진 소비자국장을 임명했다. 장 국장은 김 위원장과 같은 서울대 경제학과 81학번이다. 재벌로 치면 오너가 이사회에 자신의 친구를 이사로 꽂아 넣은 셈이다.

재벌 구조개혁을 강조하는 김 위원장이 정작 내부 구조개혁에 역행하고 있다. 공정위가 중앙행정기관이자 1심 재판 기능을 가진 준사법기관으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위원회와 사무처가 엄격히 분리돼야 한다. 하지만 양쪽의 ‘칸막이’를 높이려는 김 위원장의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독립성과 함께 공정위의 다양성도 약화되고 있다. 합의제 1심 기능을 담당하는 공정위 전원위원회는 5명의 상임위원과 4명의 비상임위원으로 구성된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첫 이번 1급 인사에서 3명의 상임위원을 모두 공정위 국장을 지낸 호남 출신으로 구성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 경쟁당국도 우리와 같은 ‘한 지붕 두 가족’ 구조라고 하지만 미국은 양쪽이 인사 등에서 실질적으로 엄격히 분리돼 운영되고 있다. 인사에 앞서 상임위원들로부터 일괄사표를 받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장이 바뀐다고 대법관이 사표를 쓰는 일은 없다.

김 위원장은 오너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전체 그룹을 지배하는 재벌 구조를 지적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이 조사를 지시하고, 자신이 심판하는 공정위의 구조적 모순을 더욱 강화시켰다. 공정법 한 전문가는 “공정위가 조사와 심판 기능을 모두 갖고 주무르면 편하겠지만 민주주의는 불편한 게 맞다”고 꼬집었다. 김 위원장이 새겨들을 말이다.

세종=이성규 경제부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