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페셜] ‘재스민 혁명’ 7년… 짧았던 아랍의 봄, 튀니지는 아직 혹한

입력 2018-01-24 05:02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재스민 혁명’ 7주년을 맞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여성들이 국기를 앞세우고 행진하고 있다. 이즈음에 튀니지 각지에서는 정부의 긴축정책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잇따랐다. AP뉴시스
튀니스 시위에 참가한 한 남성이 7년 전 반정부 시위 때 숨진 아들의 사진을 들고 있다. AP뉴시스
노점상 부아지지 분신으로
억압됐던 민중의 분노 폭발
인근 국가까지 들불처럼 번져
중동·阿 중 첫 민주체제 구축

정치적 변화는 성취했지만
혁명 후 청년 실업률 30∼40%
세금 올라 물가 천정부지 치솟아
회복 기미 없는 경제로 고통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 남동부 시디부지드 시청 앞에서 청과물 노점상을 하던 스물여섯 살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노점 압수에 항의하며 분신했다. 그가 2011년 1월 4일 숨지자 대중의 분노가 거리로 터져 나왔다. 이렇게 쏟아져 나온 것들은 대체로 막을 길이 없다. 독재정권에 짓눌렸던 모든 ‘부아지지’의 봉기에 벤 알리 대통령은 1월 14일 사우디아라비아로 도망친다. 쿠데타로 대통령에 오른 지 24년 만에, 또 부아지지가 숨진 지 열흘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후 과도정부를 거쳐 같은 해 11월 인권운동가 출신의 몬세프 마르주키 공화의회당 대표가 의회에서 4대 대통령에 선출됐고, ‘재스민 혁명’ 직후 임시 총리를 지낸 베지 카이드 에셉시가 2014년 12월 첫 민선 대통령에 당선됐다. 튀니지인들의 궐기는 국화 이름을 따 재스민 혁명이라 불리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중동·아프리카에서 시민이 독재 정권을 몰락시킨 첫 사례였으니 고무적일 만했다. 그 열기는 전염성 높은 바이러스처럼 그해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모로코 예멘 바레인으로 번지며 각국의 역사를 새로 썼다. 튀니지는 이 지역 민주화 열풍인 ‘아랍의 봄’의 진원지였고, 그 격동의 시기를 통해 민주주의 체제 구축이라는 염원을 이룬 유일한 나라로 기록됐다.

그러나 ‘해피엔딩’은 없었다

지금 튀니지에 봄의 온기는 없다. 튀니지인들이 느끼는 계절은 혹독한 겨울에 가깝다. 전보다도 높은 실업률과 임금 정체, 그럼에도 비정하게 치솟는 세금과 물가. 이런 것들이 수년간 계속되며 튀니지인들을 거듭 절망시켰고 다시 분노하게 만들었다. 튀니지가 재스민 혁명 7주년을 맞은 지난 14일 전후로 대규모 시위에 휩싸인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시위 참가자와 경찰이 충돌하고 경찰서를 비롯한 관공서가 불타올랐다. 보안군 97명을 비롯해 수백명이 다치고 시위 참가자 1명이 숨졌다. 체포된 사람은 800명을 넘겼다.

역사를 재평가하자면 재스민 혁명은 계속되는 투쟁의 서막이었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정부를 세웠다고 암흑기가 끝난 게 아니었다. 튀니지인들은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본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전했다. 벤 알리 체제에 대한 분노에 기름을 부은 건 경제난과 부패였지만 핵심 동력은 정치적 변화에 대한 열망이었다. 그때 튀니지인들은 자유와 개혁이 다른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재정난이 계속됐고 물가는 매년 10%씩 뛰었으며 청년실업률은 30∼40%대에서 내려갈 줄 모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튀니지 경제가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워싱턴 소재 국제공화주의자협회(IRI)가 지난 10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튀니지인(응답자)의 61%가 튀니지 경제 상황을 ‘매우 나쁘다’고 평가했다. ‘약간 나쁘다’고 답한 비율(26%)을 합치면 튀니지인 10명 중 거의 9명(87%)이 자국 경제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들이 꼽은 튀니지의 최대 문제는 실업(44%)이다. 시디부지드의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페티 라지미는 인디펜던트 인터뷰에서 “나는 24곳에 이력서를 보냈지만 한 곳도 회신이 없다”며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더 이상 여기서 희망이 없다. 그저 분노를 느낄 뿐”이라고 덧붙였다.

“튀니지는 다르다”는 환상

튀니지인들은 무능한 정부에 분노하고 있다. 튀니지는 경제 붕괴를 피하기 위해 2015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약 3조2600억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그 많은 돈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튀니지 경제는 이후에도 악화일로를 걸었다. IMF의 긴급 조치 요구에 튀니지 정부가 올해 초 내놓은 대책은 공무원 채용 제한, 조기 퇴직, 임금 동결 같은 긴축 방안과 세금 인상안이다. 세금 인상은 광범위한 물가 상승을 동반한다. 취업은 어려워지는데 세금과 물가는 오르는 것이다. 이 정책이 최근 반정부 시위의 기폭제였다. 시위에 참가한 철학 교수 포우드 엘라비(48)는 프랑스24 인터뷰에서 “새 정책은 극빈층을 겨냥한 것”이라며 “가난한 자들에게서 빼앗아 부자들에게 주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정부 시위가 수일째 이어지던 지난 14일 에셉시 대통령이 수도 튀니스 인근 빈민 지역인 에타드먼을 방문했다. 재스민 혁명 기념집회 사전 개막식에 참가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고위 공무원의 에타드먼 방문은 처음이었고, 그 의미만큼이나 에셉시의 정치적 속셈은 분명했다. 군인들을 대동하고 마을에 나타난 그가 행사 장소인 청년클럽에서 시민들의 불만사항에 대해 고민하겠다고 약속했을 때 주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한 번도 일정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한 청년(22)은 “청년클럽은 번듯한 장비들을 갖추고 있지만 그게 우리에게 직업을 갖게 해주지도, 먹을 걸 가져다주지도 않는다”며 “그들(정치인)은 그럴싸한 말로 약속들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 말을 먹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알자지라는 튀니지가 다른 아랍의 봄 국가들과 다르다고 전제하는 ‘예외주의’를 미신이라고 꼬집었다. 이 매체는 “계속되는 시위와 경찰국가 부활의 분명한 조짐에도 국제 언론은 튀니지를 상대적으로 성공한 나라로 보도하고 있다”며 “성공적 혁명의 모범 사례로 희망과 긍정론을 제시할 수 있지만 이런 관점은 튀니지인들이 겪는 음울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혁명앓이’ 주변국들 혼란의 소용돌이 더 커져

튀니지가 민주화 혁명 성공 사례로 더욱 부각된 이유는 ‘아랍의 봄’을 겪은 다른 나라들이 그 후 쿠데타와 내전 등으로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새 대통령 찬반 진영이 극렬히 충돌하다 새로운 군사독재 정부가 들어섰다. 30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퇴진 후 무함마드 무르시가 대통령에 오르자 그를 지지하는 무슬림형제단을 주축으로 한 이슬람 원리주의 진영과 반대파가 충돌했다. 국방장관 출신 압델 파타타 엘시시는 2013년 7월 정국 수습을 명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리비아는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붕괴 후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됐다. 중앙정부가 약해지면서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고 부족 및 지역 간 갈등이 고조됐다. 주도권을 잡으려는 무장세력들은 정부군과 수시로 충돌하며 사상자를 냈다. 이웃국인 튀니지는 이처럼 불안정한 리비아를 상당한 위협으로 보고 있다. 예멘 역시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을 축출한 뒤 평화적 정권교체에 실패하고 내전에 휩싸였다.

시리아는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하면서 내전으로 이어졌다. 내전이 장기화할수록 반군과 정부군 간 교전은 격렬해졌다. 정부군은 화학무기를 동원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북부 지역을 점령하고 거점으로 활용하다 최근에야 격퇴됐다. 시리아 난민 상황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바레인은 알할리파 국왕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지만 이후 수니파 지배층과 시아파 피지배층 간 갈등이 고조됐다. 모로코는 무함마드 6세 국왕이 왕권 축소와 의회 권한 강화를 선언하며 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개헌했지만 정치와 경제가 여전히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글=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