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고세욱] 단일팀 후유증이 걱정이다

입력 2018-01-23 00:02

일처리 속도가 거의 5G급이다. 9일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제기된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안은 11일 만인 20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확정됐다. 수년간 올림픽을 위해 손발을 맞춘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개막(2월 9일)을 불과 10일 안팎 남기고 낯선 식구 12명을 맞이한다. 그러곤 번갯불에 콩 볶듯 훈련한 뒤 첫 경기(10일 스위스전)에 나선다. 대학 동아리 연합팀이 체육대회를 해도 이런 식이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적 명장면을 보여줄”(문재인 대통령) 급조된 팀인 만큼 정부는 경기력에는 무관심하다. 올림픽 첫 승을 꿈꾼 선수들은 이보다 황당할 순 없다.

2000년대 취재차 북한을 세 차례 방문한 기자는 대북교류의 효과를 직접 체험했다. 우리 의료기기를 받으며 환히 웃은 평양의대 교수, 금강산에 파견된 남한 직원과 북한 안내원 간의 허물없는 대화. 총보다 강한 햇볕의 힘을 실감했다. 9일 회담에서 11년 만의 남북 공동입장이 확정되자 가슴이 벅찼다. 부원들에게 “이번 올림픽에 쓸 게 많아졌다”라며 웃기도 했다. 하지만 며칠 후 나온 남북 단일팀 소식에 말문이 막혔다. 이는 공동입장·공동응원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촉박한 시간은 차치하고 올림픽만 보고 꿈과 열정을 바친 선수가 피해를 본다. 이런 이유 등으로 남북관계가 좋았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단일팀을 구성하지 못했다.

단일팀 논란으로 1991년 탁구·축구 단일팀이 더욱 부각됐다. 노태우정부는 단일팀을 구성하는 회담만 1년가량 진행했다. 합동훈련은 한 달 이상 이어졌다. 이마저도 사후 평가서엔 ‘훈련기간이 부족했다’고 돼 있다. 남북의 이질성, 훈련 방식·지도의 차이를 고려하면 10일 가량 훈련하고 경기에 나서라는 요구는 어불성설이다.

정부 관계자도 인정했듯이 이번 단일팀 추진은 당사자와의 사전 협의나 공정한 절차 없이 진행됐다. 더욱이 IOC 합의문을 보면 불통을 넘어 대표팀에 대한 배려조차 없었다. 팀을 가장 잘 아는 새라 머리 감독은 인터뷰에서 “북한 선수 2∼3명은 몰라도 10명을 추가한다면 정말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 선수 12명을 받는다. 감독에게 전권을 위임한다면서 경기당 출전 엔트리 22명 중 3명을 무조건 북한 선수로 채우도록 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한반도 평화라는 대의에 걸맞게 단일팀이 됐다며 좋아하겠지만 후유증은 만만찮다. ‘북한 참가를 환영’(81.2%, 11일 한국리서치)하는 초기 우호 여론은 싸늘하게 식었다. 공정성이 결여된 데 대한 젊은 층의 분노는 현 정부에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올림픽 개막을 코앞에 두고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성공을 기원해야 할 판에 극심한 국론 분열만 초래됐다.

체육계도 걱정이 태산이다. 당장 정부는 8월 자카르타아시안게임에서 남북 공동입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과연 그것으로 끝날까. 밀어붙이기가 처음이 어렵지 성공하면 두 번, 세 번 하는 것은 관성이 되게 마련이다. 국무총리 말대로 단일팀 만들어도 무방한 ‘메달권이 아니거나’ ‘비인기 종목’ 선수들은 “남 일이 아니다”라는 반응이라고 한다. 같은 논리로 ‘16강에 진출하기 힘들 테니 월드컵 대표팀을 남북 단일팀으로 만들자’는 제안이 나오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졸속·불통의 단일팀 추진은 어느 종목도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준다. 체육계 사정을 그나마 안다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밀실·탁상행정으로 단일팀 구성을 밀어붙이거나 동조하면서 선수들이 기댈 곳도 없다.

27년 전 중국을 꺾고 우승한 뒤 부둥켜안고 울었던 탁구 단일팀 현정화·이분희의 모습은 올림픽에서 볼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분위기에서는 팀 내 남북 선수들의 불화만 표출되지 않아도 다행이다. 분명한 것은 훗날 남북 체육교류사에서 평창올림픽 단일팀은 결성 과정과 성적이 91년 단일팀과 비교되면서 ‘반면교사’의 사례로 남을 것이란 점이다. 어찌 보면 이것이 유일한 소득일지도 모른다.

고세욱 스포츠레저부장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