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 휠’ 오르락내리락 인생, 불같은 사랑을 만나다 [리뷰]

입력 2018-01-19 00:05
우디 앨런 감독의 신작 ‘원더 휠’의 한 장면.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크린에 불이 켜지고 흥겨운 복고풍 음악이 흐르면, 1950년대 미국 뉴욕 근교의 유원지 코니아일랜드 전경이 펼쳐진다. 영화의 제목 ‘원더 휠’은 이곳 명물인 대관람차 이름. 가장 높이 올라갔다 이내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마는 이 놀이기구의 얄궂은 운명은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의 삶과 겹쳐 보인다.

코니아일랜드 내 작은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지니(케이트 윈슬렛)는 무료한 일상에 지쳐있다. 한때 배우였던 그는 동료배우와 외도를 했다 이혼당하고 새 남편 험티(짐 벨루시)를 만나 이곳에 터를 잡았다. 방화(放火)가 취미인 어린 아들은 그의 골칫거리. 생기 없이 해변을 걷던 지니 앞에 어느 날 안전요원 믹키(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나타난다.

두 사람은 불같이 사랑에 빠진다. 둘 사이가 깊어질 무렵, 험티의 딸 캐롤라이나(주노 템플)가 5년 만에 아빠를 찾아온다. 갱스터 남편에게 살해 위협을 받고 도주 중인 신세. 그런 캐롤라이나에게 믹키는 첫눈에 반해버린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의붓어머니와 딸, 이들의 ‘이상한’ 삼각관계는 위태롭게 무르익는다.

눈치챘겠지만, 아름답기만 한 러브스토리는 아니다. 영화는 로맨스의 외피를 두르고 인생의 서글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좌절하고, 그러면서도 쳇바퀴 돌 듯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이들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극 중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지니 아들의 불장난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구조가 매우 독특하다. 극작가를 꿈꾸는 믹키가 써내려가는 한 편의 연극 같기도 하다. 극 초반 “세상을 놀라게 할 걸작을 만들고 싶다”는 믹키가 “나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라면서 내레이션을 시작한다. 자주 사용되는 롱테이크 샷과 과장된 캐릭터 또한 이 영화의 극적 성격을 더한다.

케이트 윈슬렛의 롤러코스터 같은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현실에 순응하며 살던 여자가 다시 일탈에 눈을 뜨고, 욕망이 좌절되자 거침없이 폭주하는 과정을 유려하게 그려나간다. 특히 자신의 집을 찾아온 믹키 앞에서 광기어린 감정을 표출하는 후반부 장면이 인상적이다. 한바탕 무대를 펼치고 난 뒤 공허감이 주는 여운도 길다.

우디 앨런 감독다운 황홀한 영상미 또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다채로운 빛과 색으로 채워진 공간들이 시각적 쾌감을 안겨준다. 붉거나 푸른 계열의 색(色)을 활용해 인물의 이미지를 표현한 점이 탁월하다.

해맑은 의붓딸을 향해 시기와 질투, 짜증 같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쏟아내는 지니의 모습에서 실없이 웃음이 터지기도. 아기자기하게 여성성을 살린 50년대 빈티지 의상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놓칠 수 없다. 25일 개봉. 101분. 15세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