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
‘조기위암 수술 후’ 건보에 포함
‘위선종 내시경 절제수술 후’
위암 가족력·위축성 위염 등
비급여 4가지도 새롭게 인정
위에 대한 적극적인 제균 치료
암 예방 효과 확인 연구 잇따라
“고위험군 제균 치료 확대해야”
일부선 “질환 없는 보균자
제균 효과 연구는 아직 불충분”
전모(46)씨는 2015년 6월 국가 위암검진을 통해 조기위암 판정을 받았다. 암세포가 위의 매끈한 표면과 바로 아래층(점막하층)까지 침범한 경우로 병기로 따지면 1기에 해당됐다. 이때 위 내시경 조직검사를 하면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 사실도 처음 알았다. 조기 위암은 최근 내시경 검사와 동시에 암이 있는 점막 부위를 살짝 도려내는 수술이 많이 이뤄진다. 수술 경과가 좋아 5년 생존율이 97%에 달한다. 문제는 내시경 절제 수술을 받아도 남은 위에 암이 재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의사는 "헬리코박터균은 위암의 주요 원인으로 균을 없애면 그만큼 재발률이 낮아진다"며 제균을 권했다. 수술 4주 뒤 1주일간 위산억제제와 항생제로 제균 치료를 받았다. 호흡(날숨)으로 제균 여부를 파악하는 '요소호기검사'도 받아 균이 깨끗이 사라진 걸 확인했다. 전씨는 4년째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다. 전씨가 받은 조기위암 수술 후 헬리코박터균 치료는 당시 건강보험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다른 치료비용은 암 환자 건강보험 산정특례로 5%만 내면 됐다. 하지만 헬리코박터 제균에 들어간 5만여원과 제균 확인 검사비 6만5000여원은 전액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
이달부터는 전씨처럼 조기위암 절제수술 뒤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는 치료를 받아도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올해 1월부터 확대·적용되는 헬리코박터균 치료 대상 및 보험 기준을 최근 고시했다.
건강보험 대상에 조기위암 수술 후와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이란 질환이 새로 추가됐다. 헬리코박터 제균에는 항생제 등 약제와 치료 기간에 따라 4만∼15만원 정도 든다. 보험이 되면 이 비용의 30%(외래 치료 시)만 내면 된다.
이전까지는 헬리코박터균 감염과 연관성 높은 소화성궤양(위·십이지장궤양)과 악성 위점막림프종(저등급 말트 림프종) 환자만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조기위암의 경우 2006년부터 절제 수술 뒤 제균 치료가 법적으로 허용됐지만 전액 본인부담(법정 비급여)이었다가 이번에 급여화됐다. 일본 연구진이 의학학술지 랜싯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조기위암 절제 수술 후 헬리코박터균을 제균한 그룹의 경우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위암 재발률이 훨씬 낮게 나왔다.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은 뚜렷한 원인 없이 혈액 성분인 혈소판이 파괴돼 온 몸에 자반(붉은 반점)이 생기고 코피가 터지는 질환이다. 헬리코박터를 제균하면 혈소판이 원상회복되는 게 확인됐다.
부모·형제 위암+헬리코박터균, 암 위험 5.3배↑
이번에 바뀐 기준에는 과거 법적 치료 대상조차 안됐던 ‘비급여 4가지’가 새롭게 인정됐다. 제균 비용은 전액 본인이 내는 조건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는 15일 “헬리코박터균에 걸렸지만 기존에는 소화성궤양 등 증상이 없으면 건강보험이 안 되는 비급여로도 적극적 제균 치료를 권하지 못했다”면서 “딱히 불법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환자가 문제 삼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신고할 경우 약값을 물어줘야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제균 치료를 해 줬다가 치료비를 환수당하는 사례도 상당수 있었다.
올해부터는 위선종의 내시경 절제수술 후, 위암 가족력(부모·형제·자매까지), 위축성 위염, 진료상 제균이 필요해 환자의 동의를 얻을 경우 비급여로 제균 치료를 할 수 있게 됐다.
위암의 씨앗인 위선종(용종의 일종)은 위암 진행 확률이 최대 30%나 되며 헬리코박터균 감염률 또한 높다. 부모나 형제·자매가 위암에 걸리면 자신의 위암 발병률은 2.85배, 위암 환자의 직계가족이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됐다면 그 위험은 5.3배까지 치솟는 걸로 나타났다.
김 교수가 2003∼2008년 위암 환자군(428명)과 위암 아닌 환자군(368명)을 대상으로 연구해 2016년 미국 소화기학회지에 발표한 결과다. 위암 직계 가족력이 있다면 20대 젊은 연령에서부터 헬리코박터균 감염 여부를 검사하고 적극적 제균 치료를 해야 한다.
헬리코박터균은 만성 위염을 일으킨다. 여기에 맵고 짠 음식 섭취, 불규칙한 식습관, 스트레스 등이 더해지면 위 표면인 점막이 점차 얇아져 ‘위축성 위염’으로 진행된다. 위 염증은 10∼20년 지속되면 위 점막이 소장이나 대장처럼 울퉁불퉁하게 변하는 ‘장상피화생’을 초래한다. 위암 직전 단계로 위암 발생률이 정상인에 비해 10.9배 높다.
김 교수는 최근 연구에서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를 통해 위암 전단계인 위축성위염은 최대 68.6%, 장상피화생은 최대 44.4% 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장상피화생이 이미 일어났더라도 제균 치료를 하는 것이 위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 의미 있는 연구다.
김 교수는 “헬리코박터 제균은 위축성 위염이 자주 발생하는 20대 이전이 제일 이상적이지만 어린 나이여서 부담스럽다면 장상피화생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20대 후반∼30대 초반이 현실적으로 좋은 시기”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궤양이 없는 기능성 소화불량(대개 신경성 위염)이나 원인을 모르는 철 부족성 빈혈, 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해 저용량 아스피린을 장기 복용해 소화성궤양이 생긴 경우 등도 의사가 제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환자가 동의하면 치료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국민 10%가 겪는 소화불량증은 위 염증으로 흔히 더부룩하고 속쓰림 증상을 보인다. 이 경우도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면 6개월 뒤부터 염증이 개선되는데, 제균을 하지 않고 증상만 치료하는 것보다 효과가 좋다.
헬리코박터가 제균됐더라도 1년 후 검사에서 다시 나타나는 재감염률이 3%에 달한다. 정기 위 내시경 검진을 할 때 재감염 여부도 체크할 필요가 있다.
증상 없는데 제균해야 하나
국내 헬리코박터균 감염률은 감소 추세다. 2016년 9월∼2017년 6월 전국 9개 3차 의료기관에서 16세 이상 건강검진 수검자 2504명을 조사한 결과, 감염률은 51.3%로 나타났다. 첫 전국 규모 유병 실태 조사가 이뤄진 1998년(66.9%) 2011년(59.8%)보다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절반 이상이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을 몸속에 안고 산다. 연령별로는 30대 29%, 40대 42%, 50대 50%, 60대 46%, 70세 이상 52%로 나이가 들수록 감염률이 높았다.
대한상부위장관·헬리코박터학회 부회장인 김재규 중앙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도시화와 산업화, 위생 환경 개선으로 헬리코박터 감염률이 점차 줄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실정”이라며 “한국처럼 위암 발생률(2015년 기준 전체 암 중 1위)이 높은 나라는 헬리코박터 감염률이 최소 배 이상 높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헬리코박터 제균률은 2005년 13.9%에서 2016년 23.5%로 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제균 실패의 원인은 항생제 내성이 증가한 탓이 가장 크다. 과거 90%를 넘었던 1차 제균치료 성공률은 70%선으로 떨어졌다.
환자 순응도가 낮은 것도 한몫한다. 제한적 건강보험으로 인한 비용 부담, 제균약 복용 및 그에 따른 부작용(설사, 무른 변) 등으로 제균 치료에 동기 부여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2009년부터 헬리코박터균 감염으로 인한 질환이 없는 경우(무증상 보균자)에도 위암 예방을 위해 제균을 강력 권고하고 있다. 김나영 교수는 “일본의 경우 2013년부터는 위·십이지장궤양 외에 내시경 검사로 헬리코박터 위염으로 진단된 경우에도 제균 치료에 보험 혜택을 주고 있다”면서 “이런 다소 급진적 제균 정책으로 감염률이 급감했고 현재 위암 사망률도 크게 줄었다는 연구논문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40세 이상에서 2년마다 위암 조기진단을 위한 내시경 검진을 해주고 있는데, 위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헬리코박터 제균을 적극 허용하는 등 예방 정책으로 전환을 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학자는 위암 발생에 헬리코박터균 외에 식생활 등 여러 요소들이 관여하고 감염자 중 극히 일부에만 위암이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적극적 제균 정책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무증상 감염자까지 광범위하게 제균 치료를 시행할 경우 발생할 항생제내성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재규 교수는 “국내에는 무증상 헬리코박터균 감염 인구를 대상으로 한 제균 치료가 미칠 득실에 대한 정확한 연구 결과가 부족한 실정”이라며 “제균의 비용 효과성, 대상 환자 수 등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확보되고 건보 재정이 뒷받침되면 건강보험 추가 확대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헬리코박터학회는 2015년부터 국립암센터 등 12개 의료기관에서 무증상 헬리코박터 감염자의 제균 치료 시 위암 예방 효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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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1-16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