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 고(故) 종현의 발인이 있기 하루 전날 아침, 공교롭게 빈소가 차려진 대학병원에 갈 일이 있었다. 연예부 기자가 아니어서 고인 소식을 전하러 간 건 아니었다. 지하철역에서 병원으로 통하는 길을 걷다가 맞은편에서 무리지어 오는 앳된 얼굴들을 만났다. 조문을 마친 10대 팬들이었다. 그들 표정에서 우상을 잃은 슬픔과 우울함이 그대로 읽혀졌다. 크게 놀랐던 점은 스쳐가며 무심코 듣게 된 그들의 말이었다. “죽고 싶다.” “너무 힘들다.”
심적 고통이 오죽했으면 어린 나이에 죽음을 생각할까. 살짝 걱정이 됐다. 인기정상 아이돌 가수의 죽음은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 실제 연예인 등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이 모방 죽음을 낳았던 사례들은 그간 꽤 있어 왔다. 그 방아쇠 역할을 했던 게 언론의 선정적 보도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중적 영향력이 큰 가수였던 만큼 보도에 신중해야 했지만 고인의 죽음 과정은 물론, 구체적 사망 장소와 방법, 유서 전문까지 공개됐다. 자극적인 기사제목, 장례식장 생중계, 유족과 지인의 슬픔은 아랑곳하지 않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도 여전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는 각 언론사에 긴급 협조문을 보내 ‘자살보도 준칙’을 지켜달라고 요청했지만 매번 그랬던 것처럼 잘 먹히지 않았다.
다만 이번 사건 관련 언론 보도에서 과거 보이지 않았던 작은 변화의 움직임이 포착된 점은 평가할 만하다. 일부 언론매체에 한정되긴 했지만 자정 노력이 처음 시도됐다. 언론 보도를 대하는 국민 태도도 한층 성숙해졌다. 모두 생명을 살리는 긍정적 신호들이다. SBS는 저녁 8시뉴스에서 지상파 방송사 중 유일하게 고인 관련 후속 보도를 하지 않았다. 보도국 회의에서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과정을 기자의 취재파일 형식으로 인터넷에 공개해 방송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MBC라디오는 과거 3년간 고인이 진행을 맡았던 프로그램(푸른밤)에서 추모 방송을 계획했다가 취소했다. 고인 육성이 다시 전파를 타는 것이 미칠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한다. 일부 언론은 고인 사망 소식을 전하며 자살예방핫라인이나 상담기관 연락처를 함께 게재했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이 오래전부터 시도하고 있는 방식이다. 유명인의 사망 사건을 어쩔 수 없이 보도할 수밖에 없을 때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기울이자는 실천이다.
중앙자살예방센터의 한 지인은 “사건이 터지면 그동안에는 언론사에 보도 수정이나 삭제 요청을 하느라 바빴는데, 이번에는 보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자문을 구하는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고 귀띔해 줬다. 늦었지만 언론의 변화가 반가웠을 듯하다.
언론의 보도 행태에 국민도 적극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MBC라디오의 추모방송 취소에 대해선 “잘한 결정”이라는 응원이 쏟아졌다. 한 댓글은 “방송 시간이 밤인데, (했더라면) 팬들이 고인 목소리를 듣고 더 힘들어했을 것”이라고 했다. SBS 8시뉴스의 후속 비보도 결정에 대해서도 “뉴스가 경쟁이 된 시대에 쉽지 않은 결정을 한 데 박수를 보낸다”는 반응이 많았다. 일부 국민은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올렸다. 자살 보도에 있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는 언론사에 법적 제재를 가하라는 내용이다.
소통의 공간이면서 자살 유해정보 통로로 지탄받는 SNS가 최근 자살 방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점도 반가운 일이다. 페이스북은 얼마 전 게시글, 동영상 등 모든 콘텐츠를 인공지능(AI) 기술로 실시간 검색해 자살 충동이나 의심 행동이 감지될 경우 사용자에게 경고를 보내거나 친구에게 알리는 프로그램을 장착하겠다고 발표했다. 동반자살 모집 정보가 가장 많이 유통돼 ‘죽음의 통로’ 별칭을 얻은 트위터 등 다른 SNS로도 확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명을 구하는 작은 실천들이 머지않아 큰 변화를 만들 것으로 기대해본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
[뉴스룸에서-민태원] 생명 살리는 긍정적 신호들
입력 2018-01-07 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