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스커드미사일 없어서 못 팔 정도… 제재 안 통해”

입력 2018-01-02 05:05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 명예교수는 6자회담 참가국 및 유럽까지 포함한 국제적 평화 틀을 통해 체제를 보장할 경우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교수가 지난 17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오거스타 자택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 한반도 정세…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 인터뷰

무기 팔아 돈 벌고 中서 쌀 밀반입
北 경제 어렵지만 항복 기대 못해

‘6자+유럽’ 국제 평화체제 조성되고
자국 안보 철저히 보장돼야 핵 포기

평창올림픽에 北 참여 유도하려면
北 체면 세워주는 방안 고민 필요

한국교회, 북한을 ‘땅끝’으로 여겨
인도주의적 지원에 관심 기울여야


박한식(79) 미국 조지아대 명예교수는 “북한은 무기판매 수입도 있고, 중국에서 밀수로 들여오는 식량도 있기 때문에 제재와 압박으로 굴복시키기는 쉽지 않다”며 “북한은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6자회담 당사국들과 유럽까지 포함한 국제적인 평화체제가 만들어지고 자기네 체제의 안보가 확고해져야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전문가인 박 교수는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여를 유도하려면 북한 체면을 세워주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 교회는 ‘북한이 땅끝’이라는 생각을 갖고 인도주의적 지원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주문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오거스타 박 교수 자택에서 인터뷰를 한 뒤 25일에 한 차례 더 전화로 인터뷰했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남북정상회담과 군사회담 모두 거절했다. 북한은 왜 진보정권이 들어섰는데도 대화를 꺼리나.

“문재인 정권이 미국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책을 펼 수 있는 정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문 정권을 과거 보수정권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을 협상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17년에만 4차례 대북 제재를 결의했다. 얼마나 제재가 강해야 북한이 협상에 나올까.

“제재와 압박이 아무리 강해져도 북한은 굴복하지 않는다. 제재가 강할수록 북한은 자기 주권이 침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제재에 굴복하는 것은 주권 침해를 내버려두는 것이고 그것은 곧 체제를 포기하는 것이다.”

-미국은 과거 중국이 사흘간 중유공급을 중단했더니 북한이 대화에 응한 적이 있다며 중유공급 중단을 요구했다. 중국이 중유공급을 중단하면 북한이 대화를 할까.

“중국이 미국 말을 듣고 중유공급을 중단하면 북한은 붕괴된다. 중국은 그걸 알기 때문에 절대 그 선까지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중국에 가치 있는 사회주의 이웃이다.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지 않는다.”

-중국이 북한과의 접경지역에 대규모 난민수용소 설치를 준비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중국이 북한 체제 붕괴를 염두에 둔 조치 아닌가.

“지금도 중국으로 유입되는 북한 난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탈북자들은 중국에서 잡혀 강제로 북송되기도 하고, 한국이나 제3국으로 가기도 한다. 탈북자 처리는 중국에서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다. 그래서 중국이 북한 난민을 일시적으로 수용하는 시설을 만드는 것이지 북한 체제 붕괴와는 상관이 없다.”

-유엔의 제재로 북한이 느끼는 압력과 고통은 어느 정도인가.

“식량도 부족하고 기계가 멈추고 경제가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손들고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 정권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는 해외 노동자가 벌어들이는 외화인데, 북한 노동자들이 전부 송환되면 북한 정권으로서도 아플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수입원이 있다. 무기판매다. 이건 워낙 비밀리에 이뤄지기 때문에 막을 재간이 없다. 내가 아는 지식과 정보로는 북한의 스커드미사일 같은 단거리 미사일은 없어서 못 팔 정도다. 그다음 중국을 통한 밀수가 있다. 중국 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에서 생산되는 쌀이 북한으로 밀반입된다. 제재가 심해지고 원조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도 1990년대 중반처럼 200만명이 굶어죽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경제적 지원과 체제 안정을 보장받으면 핵을 포기할까.

“경제 혜택을 받고 안보를 포기하는 국가는 없다. 체제 안정은 경제에서 오는 게 아니고 정치적인 평화조약이 구축돼야 한다.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은 6자회담 당사국들과 유럽까지 포함한 국제적인 평화체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틀 안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지면 북한도 핵을 포기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때부터 얘기한 것이다. 자기네 안보가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철저히 보장되면 핵을 포기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군사력 동원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리면 내우를 외환으로 다스리기 위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전쟁을 일으킨다면 김정은을 때릴 것이다.”

-평창올림픽이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려면.

“북한 체면을 세워주면서 북한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집념을 갖고 만든 마식령스키장을 활용해서 올림픽 일부 종목을 치르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그러나 그것도 요란하고 일방적으로 떠들게 아니라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물어봐야 한다. 북한에서는 한국으로부터 많은 제안을 받고 있지만 다 거부하고 있다고 하더라.”

-문 대통령이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를 미국에 제안했다. 이건 북한의 체면을 세워주는 일 아닌가.

“군사훈련 연기 제안도 (올림픽을 잘 치르기 위한) 우리의 편의 때문이지, 북한의 양해를 구하고 한 게 아니다.”

-한국 기독교는 남북관계 개선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나는 13살 때부터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고, 교회도 출석하고 있다. 예수님은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남한에서 볼 때 땅끝은 북한이다. 다만 성경을 들고 북한에 가서 말씀을 전하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역효과가 난다. 북한 주민을 사랑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고, 돕는 일을 교회가 해야 한다. 인도주의적 지원이다. 가령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조용기심장병원을 평양에 짓기로 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완성시켜주면 북한이 고마워할 것이다.”

-남북 교회 간 교류가 가능한가.

“북한에도 교회가 있다. 그러나 북한은 교회를 성장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북한 교회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북한의 신학자와 교회는 주체사상을 어떻게 보는지 토론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연구한 학자로서 변증법적 통일론을 내세우고 있다.

“지금의 남북한 안보체제로는 통일이 안 된다. 물과 기름처럼 남북한의 이질성이 첨예해졌다. 북한은 집체적이고 민족적이고 이념 중심인 반면 남한은 개인적이고 세계적이고, 물질 중심이다. 서로 조화되지 않는다.”

-어떻게 이질성을 극복해야 하나.

“동질성을 강화시켜야 한다. 남북한은 4가지 중요한 동질성이 있다. 언어와 정서, 양심과 사람이라는 가치다. 남북한은 언어가 같다. 가정을 중시하는 것에서 유래되는 정서도 같다. 정(情)과 한(恨)이라는 정서다. 가족끼리 정을 나누지 못하고 이산가족이 되면 한이 맺힌다. ‘양심’과 ‘사람’이라는 절대 가치도 남북한이 공유하고 있다. 통일국가에서는 양심을 갖고,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 박한식 교수는

평양을 50여 차례 방문한 대표적인 북한 전문가다.

1994년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 2009년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각각 주선했다. 중국 하얼빈에서 태어나 7살까지 살았고, 평양에서 초등학교를 1년 반 다녔다. 이후 할아버지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 초·중·고교 과정을 마쳤고, 경북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조지아대에서 45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카터 대통령 시절 미국을 방문한 덩샤오핑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의 주선으로 하얼빈의 친척들을 만났고 북한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와는 그가 한국으로 망명하기 직전까지 교분을 쌓았다.

글·사진=전석운 워싱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