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女각료’ 카드… ‘反트럼프’였던 2인 발탁

입력 2016-11-24 21:05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행정부의 각료급 자리에 여성 2명이 발탁됐다. 선거기간 내내 여성 비하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트럼프는 경선 때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공화당원 2명을 교육장관과 유엔대사로 각각 기용했다.

트럼프는 23일(현지시간) 억만장자 여성 교육활동가 벳시 디보스(58)를 차기 행정부의 교육장관으로 지명했다고 인수위는 밝혔다. 트럼프는 또 현역 최연소 여성 주지사인 니키 헤일리(44)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를 유엔주재 미국대사로 내정했다. 두 사람은 모두 상원의 청문회를 거쳐야 임명된다.

국무장관과 재무장관, 국방장관 등 핵심 각료 인선을 미뤄두고 교육장관과 유엔대사를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를 두고 백악관 비서실장과 수석전략가, 법무부 장관 등을 온통 백인 남성들로만 채웠다는 비판을 희석하기 위해 여성 후보들을 발표했다는 시각이 있다.

교육장관으로 지명된 디보스는 트럼프 지지자가 아니었다. 공화당 경선 때는 트럼프의 경쟁자인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을 지지했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와 칼리 피오리나 전 HP 최고경영자(CEO)를 지지하기도 했다. 미시간주 공화당 의장을 지내기도 한 디보스는 트럼프를 ‘침입자’로 간주했다. 그가 공화당의 전통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디보스에 대한 반대가 적지 않았던 이유다.

그러나 트럼프는 “디보스는 뛰어나고 열정적인 교육 주창자”라며 “디보스의 지도력으로 미국의 교육제도가 개선되고 모든 가정에 ‘학교 선택권’이 보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디보스는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 보장을 확대하는 데 헌신해 왔다. 그는 2013년 잡지 ‘자선활동’과 가진 인터뷰에서 “소득 수준이나 주거지역에 상관없이 학생들은 최고의 교육환경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2003년 ‘모든 어린이들이 소중하다(All Children Matter)’라는 교육 후원단체를 남편과 함께 만들어 수백만 달러를 기부했다. 남편은 다단계 판매회사 암웨이의 상속자다. 2004년에는 ‘학교선택동맹’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학교 선택권’을 확대하는 정책을 도입하도록 연방정부와 주정부를 설득했고, 선거 때는 이에 호응하는 후보들을 지원했다. 1990년대 도입되기 시작한 ‘차터스쿨’(공적자금으로 운영되는 자율학교)이나 ‘바우처 프로그램’(저소득 학생들을 위한 사립학교 진학 장학금)이 확산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유엔대사로 임명된 헤일리 주지사는 한때 공화당의 ‘샛별’로 불린 차세대 리더 중 한 명이다. 인도계 이민가정 출신으로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첫 여성 주지사이자 첫 소수인종 주지사라는 기록을 세웠다. 2014년 재선에 성공한 그는 올 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전국구 스타로 주목받았다.

헤일리 주지사도 공화당 경선 때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라이벌인 루비오 상원의원을 지지했고, 루비오 의원이 중도하차하자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을 지지했다.

그러나 헤일리 주지사는 당 주류들의 지지에 힘입어 트럼프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의 러닝메이트로 거론되기도 했다.

헤일리 주지사가 외교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러시아와 관계개선을 추진하는 트럼프의 백악관에 끌려갈 우려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