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전 7시20분 경기도 양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가족의 배웅을 받은 오모(44)씨가 출근하기 위해 나타났다. 새벽부터 잠복해 있던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김응희(사진) 경위도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을 1998년 강간살인사건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베테랑 형사의 집념이 18년15일 만에 한 가족을 파괴했던 사건의 범인을 잡아낸 순간이었다.
오씨는 98년 10월 27일 이사할 집을 보러 왔다며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를 방문했다. 집주인 A씨(당시 34세·여)가 그를 맞았다. A씨가 남편, 딸·아들(당시 각각 11세, 10세)과 함께 오손도손 살았던 작은 아파트였다. 그날 오후, 학교에서 돌아온 딸은 평소처럼 엄마를 찾았지만 답이 없었다. A씨는 성폭행당한 뒤 혁대로 목이 졸려 숨진 모습으로 발견됐다. 경악한 딸은 이웃집에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경장이었던 김 경위가 소속된 도봉경찰서 강력반이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도봉서는 수사본부까지 설치해 범인을 쫓았다. 현장에 남은 체액 등으로 범인의 DNA와 혈액형(AB형)을 채취하는 등 단서를 모았다. 범인은 A씨에게 가로챈 신용카드로 10회에 걸쳐 151만원을 빼내기까지 했다. 현금인출기에 찍힌 범인 사진까지 확보해 수사망을 좁혔다. 하지만 2년이 지나도록 피의자 신원을 특정하지 못해 수사본부는 끝내 해체됐다. 수사팀 막내였던 당시 김 경장은 선배들의 어깨너머로 모든 상황을 지켜봤다.
김 경장도 강북경찰서로 발령되며 사건에서 손을 떼야 했다. A씨 가족들이 슬퍼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늘 맴돌았다.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분한 마음은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18년이 흐른 올해 김 경위는 2월 광역수사대로 전입됐다. 오래된 사건파일을 다시 열었다. 이번에야말로 범인을 잡아내겠다고 마음먹었다. 김 경위는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DB)부터 뒤졌다. 강도, 살인을 저지른 유사전과자 가운데 당시 20대이면서 AB형 혈액형을 가진 사람을 추려 125명을 수사 선상에 올렸다. 이들과 현금인출기에 찍힌 사진을 대조해 오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집어냈다.
곧장 오씨가 살고 있는 경기도 양주의 아파트를 찾았다. 그는 부인과 아들 딸 두 자녀와 함께 평범한 가장으로 살고 있었다. 아파트 쓰레기더미를 뒤졌다. 오씨가 버린 담배꽁초가 나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담배꽁초에 묻은 DNA는 범행 현장에서 나온 DNA와 일치했다. 김 경위는 “범인을 검거했을 때보다 DNA가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을 때가 더 통쾌했다”고 설명했다.
광역수사대는 21일 오씨를 강간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강간살인의 공소시효는 15년이지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범인 유전자 등 명백한 증거가 있는 사건은 25년까지 늘어난다. 김 경위는 “그동안 창피해서 피해자 A씨 가족에게 연락도 못 했다”고 말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18년전 살인범 ‘담배꽁초 DNA’로 검거
입력 2016-11-2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