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 ‘은밀한 작업실’ 베일을 벗다

입력 2016-11-22 00:02
서울시립미술관이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난지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 권용주 작가(오른쪽)가 지난 18일 오픈 스튜디오 행사를 찾은 손님들에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숫대야 등 일상 용기에 물을 채우고 거울을 꽂아 인공적으로 무지개를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지하 작업실에서 살 때 무지개를 만들고 싶었던 꿈을 구현한 장치다. 김지훈 기자

“한 번에 여러 작가 작품을 볼 수 있으니 좋지요. 거기다 작업하는 과정까지 볼 수 있어 작가로서 영감을 얻게 돼요. 저는 페인팅(회화)을 하는데, 다른 분야 작가들은 어떻게 작업하나, 보는 것도 좋고요.”

지난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로 난지창작스튜디오. 추워진 날씨 탓에 외투를 챙겨 입은 신경철(39) 작가는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곳 입주 작가들의 ‘은밀한 작업실’을 외부에 공개하는 오픈 스튜디오 행사에 구경 온 손님이다.

난지창작스튜디오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서울시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레지던시(창작지원 공간)다. 환경재생의 세계적 성공사례가 된 옛 난지도쓰레기매립지 안에 있다. 이곳이 공원으로 바뀌면서 쓸모가 없어진 침출수 처리시설을 개조해 2006년부터 30대 중심의 신진 예술가들을 지원해주는 작업 공간(스튜디오)으로 쓰이고 있다.

오픈 스튜디오는 올해 1월부터 활동해온 입주 작가들이 미술계 관계자와 가족, 시민들에게 그간 실험하고 연구한 창작 결과물을 보여주는 일종의 ‘학예회’다. 입주 작가로 선정되면 무료로 1년까지(외국인은 3개월) 이용할 수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권용주, 박보나, 이정형, 신형섭, 허수영 등 20여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29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주해 있다.

작가들은 손님들에게 설명하느라 한껏 흥분된 표정이었다. 권용주 작가의 방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널려 있다. 바닥 중앙에 물이 반쯤 담긴 세수대야, 그릇, 컵 등이 널려 있고 안에 거울이 꽂혀 있어 ‘이게 뭔가’ 싶다. “이런 것도 팔리나요” “설마요” “그럼 생계는 어떻게?” “다른 일을 해서….” 인공으로 무지개를 만드는 장치라고 한다. 햇빛이 들지 않던 지하실에서 작업하던 시절 무지개를 만들고 싶던 욕망을 구현한 것이라고 머리를 긁적이며 설명했다.

개인 작업실에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던 실험적인 작품을 시도하는 작가들이 많다. 신형섭 작가의 방에는 선풍기가 윙윙 돌아가고 있고 한쪽 벽에 투사된 영상에는 깃털이 파르르 떨리는 장면이 이어진다. 신 작가는 “디지털 이미지가 아니라 옛날식 슬라이드 필름 안에 깃털을 넣은 것”이라며 “오래 전 시도하다가 그만 둔 작업인데 이곳에선 맘껏 하고 있다”며 웃었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을 받은 임흥순 감독도 입주해있다. “세계적인 상을 받았는데 아직도 레지던시에 있느냐”고 묻자 “돈이 되는 작업을 하는 게 아니다보니…”하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미디어아트를 하는 박보나 작가의 작업실을 둘러보러 온 박윤경 작가는 “회화, 설치, 조각 등 다른 분야의 작가들과 한 공간에서 정보를 나누며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레지던시는 2000년대부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문화지원사업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작업실만 제공했으나 점차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특화하는 추세다.

난지창작스튜디오는 작가들이 기획자가 돼 전시를 연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담당 큐레이터 박순영씨는 “이들에겐 개인전이 작가로 성장하는데 정말 중요하다. 따라서 기획자의 관점에서 자신의 작품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고, 자신을 어떻게 홍보할지 전략을 세우는 훈련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3일간의 행사기간 동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등과 여러 갤러리 관계자들이 다녀갔다. 페리지갤러리의 신승오 아트디렉터는 “우리는 40대 작가 개인전을 주로 연다”면서 “이곳은 30대 위주로 입주해 있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가 누구인지 살펴보러 왔다”고 말했다.











글=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