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한산하던 트럼프 캠프, 플로리다서 이기자 ‘북새통’

입력 2016-11-09 18:27 수정 2016-11-09 21:4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지지자들이 8일 오후(현지시간) 뉴욕 힐튼미드타운 호텔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다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된 뒤 환호하고 있다. 지지자 수천명은 이곳에서 트럼프가 9일 새벽 승리연설을 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새 대통령의 탄생을 축하했다.AP뉴시스
전석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으로부터 당선 축하 전화를 받은 직후인 9일 새벽 3시쯤(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힐튼미드타운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 나섰다.

트럼프는 10분 남짓 연설하는 동안 승리를 만끽하려는 듯 평소보다 훨신 느긋한 표정이었다. 연설 내용도 클린턴으로부터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얘기와 가족, 측근들에게 ‘고맙다’는 인사가 대부분이었다.

트럼프는 “방금 클린턴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며 “오랫동안 이 나라를 위해 공직에 헌신해온 그녀에게 우리는 큰 빚을 졌다”고 클린턴의 노고를 치하했다. 트럼프는 “나도 이번 선거에서 열심히 싸운 클린턴과 가족들에게 축하한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승리는 지지자들에게도 믿기지 않는 충격과 반전이었다. 트럼프가 승리할 경우 행사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예약한 호텔 주변은 개표가 끝나갈 무렵까지 한산했다. 반면 클린턴이 승리 연설에 대비해 물색해둔 행사장 주변에는 투표가 종료되기 전부터 승리를 확신한 지지자 수천명이 몰려들어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개표가 한창 진행중이던 8일 오후 10시까지 기자는 뉴욕 맨해튼 웨스트 40번가에서 클린턴 지지자들을 인터뷰하고 있었다. 제이컵 K 재비츠 컨벤션센터에 들어가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 모두 클린턴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초저녁까지도 대부분 현지 언론들이 클린턴의 승리를 예고하고 있었고, 양쪽 행사장에 몰린 인파의 규모도 달랐기 때문이다.

오후 9시쯤부터 사우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 텍사스 등 미 남부 지역이 트럼프 지지를 의미하는 붉은색으로 번져나가는 걸 봤지만 취재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오후 10시30분쯤 링컨터널 입구까지 이어진 대기행렬을 빠져나와 잠시 스마트폰으로 개표상황을 점검하다가 깜짝 놀랐다. 핵심 경합주 플로리다가 트럼프 승리로 기울었다는 소식이었다. 자동차 계기판처럼 생긴 뉴욕타임스의 승리확률 그래픽은 어느새 클린턴에서 트럼프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부랴부랴 트럼프 연설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구글맵을 검색했다. 뉴욕 힐튼미드타운 호텔은 재비츠 컨벤션센터에서 1.7㎞ 거리에 있었다. 경찰 통제구역을 빠져나온 뒤 서둘러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기사도 놀랍다는 듯 “트럼프가 이길 것 같다”고 말했다.

호텔 주변엔 어느새 전 세계에서 몰려든 취재진이 진을 치고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경찰은 호텔 주변에서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뉴욕시는 이날 트럼프와 클린턴의 행사장을 비롯한 시내 곳곳에 5000명 이상의 경찰을 배치했다. 교황 방문과 새해맞이 행사에 버금가는 경계수준이라고 했다.

호텔 입구는 트럼프 지지자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뒤섞여 있었고, 손팻말을 들고 트럼프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클린턴 행사장 주변에 비하면 여전히 인파가 많지 않았다.

덴마크에서 왔다는 관광객 칼 피터슨(56)씨는 “트럼프의 당선은 전 세계에 불행”이라며 얼굴을 찌푸렸다. 일행인 에릭 마퍼(62)씨는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만들고,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겠다는 트럼프가 이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지지자라고 밝힌 중년의 백인 남성은 “월가의 대형 은행들과 친한 클린턴이 중산층을 대변한다는 주장은 믿을 수 없다”며 “트럼프가 잃어버린 일자리를 되찾고 경제를 일으킬 적임자”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정보기술(IT) 기업에 근무한다는 제임스 뭉가이(38)씨는 “정치인들이란 거짓말을 밥 먹듯 하지 않느냐”며 “클린턴은 국무장관 시절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해놓고, 막상 선거에 출마한 뒤에는 TPP에 반대한다고 했다”고 꼬집었다.

클린턴 지지자 중에서도 클린턴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뉴욕에서 나고 자랐다는 백인 킴(29)씨는 “샌더스가 경선에서 패한 뒤 현실적인 대안이 클린턴밖에 없어 투표했지만, 클린턴이든 트럼프든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뉴욕=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