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 저질렀다니 참담”… 남 얘기하듯 ‘최순실 해명’
입력 2016-11-04 17:53 수정 2016-11-04 21:20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5일에 이어 열흘 만에 두 번째 대국민 사과를 했다. 관심은 국정농단 장본인인 최순실씨와 대통령의 관계에 모아졌다. 발표 전 박 대통령이 최씨에 대해 ‘참회록’ 수준의 얘기를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실제 진행된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는 최씨 언급이 추상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4일 담화에서 최씨 이름을 세 번 얘기했으나 최씨와의 인연, 최씨 역할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설명했다. 최씨가 어떻게 국정을 농단했는지 구체적인 해명이 부족했다는 평가다. 또 최씨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았고,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속 시원히 밝히지 않았다. ‘최순실 게이트’의 출발점이 됐던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과 관련해 최씨가 기부금 마련을 요청했는지, 아니면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모금을 지시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해명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이번 게이트를 ‘최순실씨 관련 사건’으로 규정했다. 박 대통령은 “국가 경제와 국민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최씨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어제(3일) 최순실씨가 중대한 범죄 혐의로 구속되는 등 검찰 특별수사본부에서 철저하고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최씨 구속 사실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1차 대국민 사과 때와 마찬가지로 최씨와 관련해 ‘인연’ ‘도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해 가족 간의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다”고 말했다. 이어 “홀로 살면서 챙겨야 할 여러 개인사들을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아서 오랜 인연을 갖고 있었던 최순실씨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었고,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췄던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돌이켜 보니 개인적 인연을 믿고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에게 엄격하지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고 토로했다.
박 대통령은 최씨와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로 검찰 수사를 들었다. 박 대통령은 “자칫 제 설명이 공정한 수사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염려해 모든 말씀을 드리지 못하는 것뿐이며 앞으로 기회가 될 때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처음 꺼냈던 1차 대국민 사과에서 박 대통령은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이라고 표현했었다. 지난 대선 때 연설이나 홍보 등에서 도움을 받았으며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해명했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대변인은 “모든 책임을 최순실 개인의 일탈로 돌렸고, ‘외롭게 지내 와서 도움을 받았다’며 동정을 구걸했다”고 비판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