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재중] 센트럴파크와 용산공원

입력 2016-09-08 18:26

넓은 녹지와 호수, 아름다운 정원과 산책로, 그리고 동물원과 어린이 놀이터….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센트럴파크의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이다. 6일(현지시간) 오전 뉴욕 출장 중에 짬을 내어 센트럴파크를 찾았다. 유모차를 밀거나 애완견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 조깅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호수에서 낚시하거나 보트에서 노를 젓는 사람들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주하게 살아가는 일상을 떠올리기 쉬운 뉴욕에서 센트럴파크는 생활의 여유를 느끼게 하는 산소와 같은 존재다.

우리나라도 서울 중심부에 센트럴파크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국가공원이 들어선다. 바로 용산공원이다. 2017년 말 용산 미군기지 이전이 완료되면 2019년 공원 조성에 착수해 2027년 완공될 예정이다. 용산이 어떤 곳인가. 고려시대 몽고와 조선시대 청나라의 침략 거점이었고 일제 강점기 대륙 침략의 병참기지였으며 한국전쟁 이후 현재까지 미군사령부가 주둔하고 있어 민족 수난의 역사를 상징하는 곳이다. 또한 한강의 옛 물길인 ‘만초천’, 무지개 모양의 ‘홍예교’, 조선왕실에서 왕이 기우제를 지낸 ‘남단 유구’, 일제 강점기 헌병대 감옥으로 사용된 ‘위수감옥’ 등 시대적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소중한 역사적 공간이다. 아울러 북한산과 남산,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남북 녹지축과 한강이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용산공원이 어떤 모습을 갖추느냐에 따라 대한민국과 수도 서울의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토교통부가 용산공원 조성을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토부가 지난 4월 발표한 용산공원 콘텐츠 도입 계획을 보면 최초의 국가공원다움은 보이지 않고 8개 부처가 제출한 계획을 짜깁기했다는 인상을 준다. 이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31일 정부의 용산공원 조성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6가지 제안을 했다.

우선 용산공원 부지에 대한 공동 조사를 실시하고 국가공원 성격을 명확히 하며, 부지 반환 및 미군기지 이전 시기를 공표하자는 것이다. 또 범정부적 기구를 구성하고 시민의 참여를 확대하자고 했다. 사실 서울시는 용산공원 조성에 대한 권한이 없다. 하지만 공원이 위치한 지방자치단체로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천년에 한 번 올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인 만큼 용산공원의 고유한 의미를 살려 세계적 명소가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일본 히로시마의 평화기념공원이나 도심 한복판의 시민 공간인 미국의 센트럴파크를 참고할 만하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영역다툼을 할 게 아니라 서로 머리를 맞대고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또 전문가와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활발한 논의를 거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그래야 사업이 힘을 받을 수 있다.

아울러 친환경적이고 역사·문화유산이 보존되는 공원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실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하고 주요 역사·문화자원에 대한 조사도 이뤄져야 한다. 그런 다음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가공원의 성격을 명확히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또한 미군 잔류부지 등으로 인해 당초 계획의 반쪽짜리로 전락한 공원 경계를 회복해야 한다. 지금 당장의 경제적 가치보다 훗날 남북통일이 되고 후손들이 용산공원을 거닐 때 민족의 수난 역사를 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기억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뉴욕=김재중 사회2부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