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16일 포르투갈 포르투 에스타디우 두 드라가오. 주제 무리뉴(5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 지휘했던 FC포르투는 새로운 홈구장을 개장하며 첫 번째 상대로 스페인 FC바르셀로나를 초청했다.
친선경기였다. 두 팀 모두 부담스럽지 않은 전력을 꾸렸다. 바르셀로나는 2년 전부터 유소년팀에서 육성한 아르헨티나 소년을 선수단에 넣었다. 그리고 75분 동안 지루한 공방 속에서 득점 없이 맞선 후반 30분 이 소년을 투입했다.
170㎝도 안 되는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 세상물정 모르는 풋내기마냥 해맑은 얼굴과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하지만 이 소년은 그라운드로 들어서자마자 폭발적인 속력과 현란한 발기술로 적진을 휘저었다.
그렇게 경기종료까지 15분 동안 단 두 차례 얻은 기회에서 모두 골을 넣어 바르셀로나의 2대 0 승리를 이끌었다. 무리뉴 감독의 사령탑 초년병 시절 홈구장 개장경기 완패의 수모를 안긴 이 소년의 나이는 고작 16세 145일이었다.
리오넬 안드레스 메시 쿠치티니(29·아르헨티나). 메시는 그렇게 혜성처럼 등장했다.
메시는 증조부가 아르헨티나에 뿌리를 내린 이탈리아 이민자 후손이다. 유럽인의 아메리카대륙 이주가 활발했던 20세기 초중반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메시의 집안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철강노동자, 어머니는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꾸렸다. 메시는 지역축구단 코치였던 아버지를 따라 자연스럽게 축구를 시작해 골목에서 공을 차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95년 아르헨티나 뉴웰스 올드보이스 유소년팀에 입단해 유망주로 주목을 받지만 11세였던 1998년 성장호르몬결핍증(GHD) 진단을 받으면서 시련이 시작됐다. 신장 150㎝ 이상으로 자랄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치료를 위해 필요한 돈은 매달 1000달러(약 110만원). 가난한 부모는 감당할 수 없었다. 가능성만 믿고 투자하기엔 구단의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그때 메시를 눈여겨본 바르셀로나 스카우트가 나타났다. 바르셀로나는 치료비용 전액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2000년 메시를 유소년팀으로 영입했다. 메시의 바르셀로나 입단은 미래의 성공보다 당장 오늘을 살기위한 선택이었다.
메시의 기량은 바르셀로나의 체계적인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만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불과 2년 안에 유소년팀 안에서 메시를 능가할 또래는 없었다. 16세에 1군으로 데뷔한 메시의 빠른 성장은 그래서 가능했다.
메시는 프로로 입문한 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8회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4회 우승을 달성했고, 국제축구연맹(FIFA) 발롱도르 최다(5회) 수상자의 타이틀까지 손에 넣었다. 막대한 부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세계 모든 축구선수의 이상향이자 21세기 축구의 상징 그 차체였다.
하지만 빠르게 축적한 부와 명예는 가난했던 메시와 아버지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메시는 2007∼2009년 초상권 수입 416만 유로(55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유령회사를 설립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 6월 바르셀로나법원으로부터 징역 21개월을 선고받았다.
2년 이하의 형을 받은 초범에 한해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관례에 따라 메시는 추징금 폭탄을 맞고 끝날 가능성이 높지만 그동안 쌓은 명예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같은 달 미국에서 열린 2016 코파아메리카에선 우승을 놓치고 국가대표 은퇴까지 선언했다.
그렇게 두 달을 은둔한 메시는 2016-2017 시즌의 개막을 알린 지난달 18일 세비야와의 슈퍼컵에서 머리카락을 노랗게 염색하고 바르셀로나 홈구장 캄프 누로 나타났다. 평소 튀는 행동을 즐기지 않던 메시의 완전한 변신이었다. 덥수룩한 턱수염은 탈세 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새출발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다. 바뀐 것은 모습만이 아니다. 마음도 새롭게 먹었다. 메시는 5일 아르헨티나 방송 텔레페와 인터뷰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생각으로 머리를 물들였다”며 “뉴웰스 올드보이스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바르셀로나 이외의 팀을 말한 적이 없는 메시의 입에서 이례적인 발언이 나왔다. ‘초심(初心)’. 올 시즌을 막 시작한 메시의 다짐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금발의 메시, 처음처럼
입력 2016-09-06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