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철강회사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에 1억 배상”

입력 2016-08-23 18:42
1925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고(故) 김모 할아버지는 18세이던 43년 3월 김제역 앞에서 일제(日帝)의 ‘강제 동원’에 차출됐다.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김 할아버지는 화물열차에 실려 여수로 끌려갔다 다시 배로 일본 시모노세키의 한 훈련소에 갔다. 그곳에서 1개월간 군사 훈련을 받은 김 할아버지에게는 당시 일본제철이 규슈(九州)에서 운영하던 야하타(八幡) 제철소의 강제노역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 할아버지를 비롯한 강제 징용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항상 감시를 받으며 일했다. 임금은 전혀 받지 못했다. 제철소 기숙사 사감은 ‘월급을 모두 저축해 귀국할 때 돌려주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김 할아버지는 44년 일본군 2754부대에 차출돼 군사훈련을 받다 다음 해 광복을 맞이하며 46년 5월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2012년 11월 김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유족들은 일본제철의 후신(後身)인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김 할아버지의 못 받은 임금과 위자료 등 총 1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법원은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전서영 판사는 김 할아버지의 아내 정모씨 등 3명이 신일철주금 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전 판사는 “(김 할아버지는) 가족과 이별해 월급도 받지 못하고 교육의 기회·직업 선택의 자유도 박탈당한 채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강제 노동에 종사해야 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이 2012년 강제징용 피해자의 청구권을 인정한 이후 하급심은 연이어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진행 중인 10여건의 소송 중 대법원에서 확정된 판결은 없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