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는 20일(현지시간)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여자골프 금메달이 확정된 직후 “제 한계에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올림픽에 나왔다”고 말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녀에게도 올림픽 도전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는 뜻으로 들렸다. 힘든 준비기간을 거쳤지만, 박인비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장애물을 다 이겨냈다. 1년 내내 따라다녔던 부상과 슬럼프도, “다른 선수를 내보내라”는 비난도 박인비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경쟁자들은 그녀의 불굴의 의지와 용기 앞에 전부 무릎을 꿇었다.
꺾을 수 없는 투혼, 부상도 숨겨
박인비는 한국 선수 중 가장 높은 세계랭킹을 기록하고 있지만, 올 시즌 초반 허리부상으로 고전한데 이어 설상가상으로 왼쪽 손가락 통증까지 찾아와 슬럼프를 탈출하지 못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10개 대회에서 기권 세 차례, 컷 탈락 두 차례를 기록했다. 이달 초 제주도에서 열린 삼다수 마스터스에선 컷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본인조차 “주위에서 ‘다른 선수한테 기회를 주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는 말들이 많았다. 사실 나도 내가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고 했다. 또 “올 시즌 부상 등으로 인해 제대로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기간이었다”고도 했다.
리우에서의 2라운드 후 박인비는 “통증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건 일종의 자기최면이었다. 금메달을 건 뒤 비로소 “사실 통증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통증 때문에 못 친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한참 좋을 때보다 거리가 줄고 미스 샷이 툭툭 나왔다. 생각지 못한 위기도 있었다”고 했다.
그만큼 박인비에게 올림픽은 큰 목표였다. “전혀 다른 걸 생각해본 게 없었다. 모든 걸 쏟아부었다. 누가 뭐라 해도 떳떳한 플레이를 하자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준비기간을 회상했다. 박인비는 또 “몸을 많이 혹사시켰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완벽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몸에 남아 있는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기분”이라고 했다.
리우에서도 박인비는 남달랐다. 라운드가 끝나면 곧장 연습장으로 달려갔다. 보통 선수들은 30분가량 몸을 푸는데 반해 두 배인 1시간 가까이 스윙연습에 몰두했다. 박인비의 지난해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248야드였지만 올 시즌에는 부상으로 거리가 나지 않았다. 5월 열린 킹스밀 챔피언십에선 219야드에 불과했고, 삼다수 마스터스에선 227야드였다. 우승 뒤 ‘금메달의 터닝 포인트가 무엇이었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그녀는 “부상 여파로 원하지 않는 동작들이 나왔다. 그래서 스윙을 다시 잡았다. 자신감이 생기니 버디 기회가 왔고 그게 원동력이 됐다”고 답했다.
태극마크의 힘, 응원의 에너지
최종라운드에서 리디아 고는 침묵하는 박인비에게 “언니, 한국에서 대회하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골프장에는 홀마다 태극기 물결이 이어졌다. 박인비는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무의식중에 두 팔을 들어올렸다. 온 세상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모든 분들이 박인비를 외쳐줬다”고 했다. 이어 “한국에 온 것 같았다. 많은 (교포)분들의 힘이 전달되는구나 싶었다. 볼이 홀에 자석이 붙어있는 것처럼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고도 했다.
박인비는 “태극마크는 무한한 힘을 내게 주는 에너지”라며 “초인적인 힘을 준다. 더 긴장하고 그런 것 있었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건 엄청난 의미가 있다”고 웃었다. 그동안 숱한 영광을 맛봤지만 골프 인생을 통틀어 이번 금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이 가장 기뻤다고도 했다. 박인비는 “힘든 시기를 겪고 한계를 넘어선 보상이었다. 출전 결정 후에도 번복하고 싶었다. 남편하고 코치에게 수도 없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한 단계 성장한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아울러 “가장 영광스러운 첫 번째는 스스로에게 준 용기였고, 두 번째는 금메달”이라고 했다.
큰 무대에 강한 진면목도 확실하게 보여줬다. 8년 동안 7번이나 메이저대회를 정복했고, 지난해 브리티시오픈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도 달성했다. 올림픽까지 우승하면서 박인비는 또 하나의 ‘최초’ 글자를 스포츠 역사에 새겼다. 골프계를 넘어 올림픽에서도 다시 나올까 말까한 ‘전설’이 된 것이다.
골든 슬램
'골든 (그랜드)슬램'은 테니스에서 유래한 타이틀이다. 기존 4대 메이저대회를 석권한 '그랜드슬램' 선수가 올림픽에서 우승했을 때 얻는 영예다. 여자골프는 4대 메이저대회(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LPGA 챔피언십·US 여자오픈·브리티시 여자오픈) 체제로, 올림픽까지 우승할 경우 골든 슬래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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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데자네이루=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박인비 “통증이 없던 적이 없었지만… 내 한계에 도전했다”
입력 2016-08-22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