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도 근대유산에 ‘창의적 문화色’ 입히기 한창… 요트 클럽·아파트형 공장 ‘새 생명’

입력 2016-08-22 19:43 수정 2016-08-22 20:46
경찰기혼자기숙사로 쓰이던 건물을 리노베이션해 들어선 홍콩의 복합문화공간 PMQ 전경, PMQ 내부에 입점한 디자이너들의 패션 및 공예품 가게, 한국의 이태호 작가가 그린 ‘물고기 벽화’, 공공미술관이 된 왕립홍콩요트클럽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홍콩섬의 비즈니스 중심지 센트럴스테이션(中環驛)에서 15분 정도 가쁜 숨을 쉬며 언덕길을 올라가면 젊음의 거리 소호가 나타난다. 바와 이국적 음식점 등이 즐비한 이곳에 복합문화공간 PMQ(경찰기혼자기숙사·Police Married Quarters)가 우뚝 서 있다.

지난 19일 찾은 PMQ는 개장 3년 만에 쇼핑과 야경의 도시 홍콩에 새로운 색을 입히는 신개념 문화 랜드마크가 된 듯했다. 빅터 창 PMQ 대표는 “창의와 산업을 연결시킨 새로운 플랫폼”이라며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경찰 기숙사, 요트 클럽, 공장…. 한국이 그러하듯 홍콩에서도 수명을 다한 근대화와 산업화의 유산이 문화공간으로 한창 탈바꿈하고 있다. PMQ 자리엔 원래 1862년 세워진 홍콩 최초의 서양식 초중등 공립교육기관인 중앙서원이 있었다. 2차대전 때 폭격으로 학교 건물이 무너지자 그 땅에 1951년 하위직 경찰가족 기숙사인 PMQ가 건립됐다. 2000년부터 쓸모를 잃고 버려졌던 PMQ는 홍콩 정부의 도심재건사업에 따라 2014년 민관협력모델로 현재 용도로 새 생명을 얻었다.

나란히 선 7층 학교 건물 두 동(棟)이 디자이너 숍으로 거듭난듯한 인상이다. 복도를 낀 작은 숍마다 의류, 스카프, 구두, 가방, 선글라스, 금속공예품, 도자기 등 패션과 공예 상점이 들어차 있다. 어디서 본 듯한 판박이 상품이 아니라 디자이너들의 창의가 반짝이는 작품들이다. 처음 숍을 연 새내기부터 이미 뉴욕에 진출할 정도로 입지를 굳힌 비비안 탐까지 100여명의 디자이너들이 저렴한 임대료를 내며 입주해 있다.

런던 유학파 디자이너 찰리 호는 “전에는 작업실만 있었는데 여기는 숍까지 갖춰 고객의 피드백을 바로 받을 수 있어 좋다”며 “정상적인 임대료를 내면 우리 같은 신진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다.

큐브는 건물 두 개 동을 중간에 브리지처럼 연결시켜 만든 다목적홀이다. 지붕엔 옥상 정원도 있다. 기존 건물의 뼈대에 유일하게 손을 댄 곳이다. 창 대표는 “순수예술 창작공간으로 쓰기에는 협소했다. 그래서 디자인 공예 부분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디자인과 공예 숍이 들어섰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관광 명소를 염두에 둔 듯하다. 각국 관광객 유치를 위한 아이디어도 빛난다. 홍콩 작가뿐 아니라 대만, 태국 등 여러 국가에서 초청한 작가들이 그린 계단 벽화도 그런 노력으로 보인다. 훼손 논란을 빚은 ‘이화마을 해바라기 계단’의 작가 이태호씨의 물고기 그림 계단도 있다. 월별로 국가별 페스티벌도 연다.

마당에는 비닐을 이어 붙여 만든 벌룬에서 놀기, 버려진 종이상자로 집짓기, 레이싱 카 만들기 등 참여형 놀이 공간이 마련됐다. 인근 주민 등 가족 고객을 겨냥해서다.

홍콩섬 북쪽 바다에 면한 코즈웨이베이에 1908년 세워진 왕립홍콩요트클럽의 붉은 벽돌 건물은 2013년 공공미술관이 됐다. 오일스트리트에 위치한 지명을 따 미술관 이름도 오일(Oi!·로고에서는 !를 사용함)이 됐다. 문화공간으로 ‘와서 우리랑 예술을 해요’를 모토로 참여형 예술프로젝트를 집중적으로 벌여왔다. 1950, 60년대의 저소득층 지역의 아파트형 공장도 예술가창작지원공간인 JCCAC(경마클럽창의예술센터)로 2010년 거듭났다.

홍콩의 버려진 공간 재생 사례는 이날 서울문화재단과 PMQ의 공동 주최로 큐브에서 열린 심포지엄 ‘사회적 재생: 창의적 개입의 효과’에서 발표됐다. 서울문화재단 한지연 제휴협력실장은 신당동의 재래시장에 들어선 신당창작아케이드, 철공소지역에 위치한 문래예술공장 등 서울시 산하 창작지원공간에 대해 소개했다. 한 실장은 “홍콩과 한국은 근대화의 역사가 비슷해 최근 10년 사이에 이런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다”며 “노하우를 공유하며 협력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예술가 창작 공간 지원은 무상이다. 홍콩은 임대료를 받고 제공하며 민관협력 모델이 생겨나는 등 자본주의적 성격이 더 강한 것이 특징이다.

홍콩=글·사진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