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보다 값진 패자의 ‘아름다운 승복’

입력 2016-08-19 21:13
한국 태권도 국가대표 이대훈이 18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3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남자 68㎏급 8강전에서 요르단의 아흐마드 아부가우시(왼쪽)에게 패배한 뒤 박수를 보내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이대훈이 아부가우시에게 엄지를 치켜세운 모습.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3 경기장에서 18일(현지시간)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태권도 남자 68㎏급 8강전. 이대훈(24·한국가스공사)은 고전 끝에 요르단의 복병 아흐마드 아부가우시에 8대 11로 졌다.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이대훈에게는 충격의 패배였다. 4년간 피땀 흘렸던 목표가 사라진 터. 진한 아쉬움과 아픔이 그에게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잠시 아쉬움을 표시한 이대훈은 이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아부가우시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그의 손을 직접 들어주고 박수까지 쳐줬다. 이 모습에 관중은 두 선수가 경기장을 떠날 때까지 아낌없는 호응을 보냈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이대훈은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어릴 때는 경기에 지면 슬퍼하기 바빴습니다. 지난 올림픽 때도 지고 나서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상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죠. 속으로는 아쉽고 헤드기어를 던지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상대를 존중해주는 입장이 되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사실 올림픽 전부터 세계랭킹 1위로 체급에서 우승 후보로 꼽히며 항상 여론의 주목만 받았던 이대훈이었다. 하지만 승리보다 패배한 경기에서 아름다운 영혼을 보여준 것이다. 자신의 패배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상대의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이대훈은 패배의 아픔 속에서도 상대를 배려했다. 그는 “승자가 나타났을 때 패자가 인정하지 못하면 승자도 기쁨이 덜하다”며 “패자가 인정하면 승자도 더 편하게 다음 경기를 잘 치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게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올림픽 정신은 금메달이 아닌, 승부를 즐기고 승패를 받아들이며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라는 걸 몸소 표현했다.

이대훈의 말은 울림이 깊었다. 최근 한국에선 스포츠뿐 아니라 정치·사회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극한의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경쟁에서 승자와 패자는 반드시 있는 법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패배를 받아들이기보다 이에 불복하고 승자를 깎아내리는 데 여념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대훈은 올림픽 정신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초인 ‘승복의 원칙’까지 온몸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대훈은 또 패배에서 값진 교훈을 찾으려 했다. 더 성숙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못 따도 내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을 평생 갖고 살 것도 아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또 하나의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졌다고 기죽어 있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또 다른 감동도 선사했다. 투혼으로 부상을 딛고 동메달을 따낸 것이다. 이대훈은 패자부활전에서 이집트의 아흐메드 고프란을 꺾은 데 이어 동메달결정전에서 벨기에의 자우드 아찹마저 물리치고 동메달을 따냈다. 한국 남자 태권도 사상 첫 2개 대회 연속 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동메달결정전은 이대훈의 근성과 투혼이 빛난 경기였다. 이대훈은 마지막 3회전에서 4-5로 뒤졌지만 경기 종료 22초를 남겨놓고 발차기를 성공시켜 7-5로 경기를 뒤집었다. 이 과정에서 왼쪽 무릎 부상을 당했다. 아픔으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 서 있기조차 힘든 다리로 이대훈은 계속 공격에 나서 11대 7로 경기를 끝냈다. 관중은 그런 투혼에 감동하며 이대훈을 맘껏 연호했다.

이대훈은 경기가 끝난 후 “비록 8강에서 졌지만 내게 소중한 기회가 왔다. 그래서 매 경기 최선을 다했다. 금메달만큼 값진 동메달을 가져갈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축전을 통해 “승패를 떠나 상대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 선수의 멋진 모습은 우리 국민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줬다”며 “진정으로 올림픽 무대를 즐기며 전 세계에 정정당당한 태권도 정신을 보여준 이 선수는 대한민국 태권도의 자랑”이라고 칭찬했다.



리우데자네이루=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