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의 망명은 최근 계속되고 있는 북한 엘리트층의 이탈 추세가 점점 더 핵심부로 번져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올 상반기 당 대회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김정은 시대’를 선포했지만 체제 불안과 공포정치 속에 외교관, 군 관계자, 해외 근로자 등이 잇달아 탈출하는 등 내부 결속 악화가 가시화되면서 북한 최고위층의 심기를 불편케 하고 있다.
태 공사의 탈북은 그가 역대 탈북한 외교관 중 최고위급인데다 10년 넘게 유럽에서 근무한 데서 알 수 있듯 철저한 사상검증을 거친 인물이라는 점에서 북한 정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줄 전망이다. 영국 언론들이 17일 집중 조망한 대로 태 공사가 ‘김정은 체제를 서방에 홍보하는 임무’를 담당해 왔다는 사실도 상징적인 대목이다.
북·미 간 대화 채널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는 경우 북한은 미국의 최우방인 영국을 외교적 우회 채널로 삼아 공을 들여왔다. 영국 공관이 ‘유럽 내 북한 외교의 주요 거점’으로 분류되는 만큼 타 지역의 외교관들에게도 심리적 동요를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런던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아시아 전문가 존 닐슨-라이트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태 공사의) 망명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북한이 런던에 두는 외교적 우선순위를 고려할 때 북한 정권에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생계형 탈북이 점차 줄어드는 가운데 북한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엘리트층 민심 이반은 최근 탈북 이슈의 주요한 화두다. 중국 소재 북한 식당에서 일하던 외화벌이 일꾼들의 집단 탈북, 국제대회에 참가한 수학 영재의 망명, 북한군 장성급 인사와 외교관의 제3국행 등이 연이어 보도됐다.
북한 내부의 분위기도 뒤숭숭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련의 사태를 체제 위협으로 규정, 정권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모양새다. 지난 4월 중국 소재 북한 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귀순과 관련해 보위부 요원 등 책임자 6명을 공개 처형하고 주중 외교관들을 평양으로 소환하는 등 내부 단속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다만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을 근거로 ‘북한 체제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태 공사는 오랫동안 유럽에서 근무했고, 유럽 쪽은 상납금 이슈와 거리가 있어 개인적 문제로 인한 망명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정건희 기자
北 엘리트 엑소더스?… 심상찮은 김정은 정권
입력 2016-08-17 18:16 수정 2016-08-17 2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