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 아우성보다 대통령 한마디가 더 무서운 산업부

입력 2016-08-12 18:14 수정 2016-08-12 23:32
전기료 누진제와 관련한 정부의 행태는 이 지독한 폭염보다 더 짜증이 난다. 국민이 그렇게 아우성을 쳐도 전기료에 손댈 수 없다더니 대통령이 한마디 하자 그날로 감면안을 내놨다. “하루 4시간만 틀면 10만원을 넘지 않는다”고 구체적 수치까지 들어가며 반대하던 입장은 “국민이 힘들어한다”는 한마디에 완전히 뒤바뀌었다. 우리 국민의 고통은 대통령이 그렇다고 말해야 비로소 장관에게 전달된다. 대통령만 바라보고 일하는 장관의 민낯을 우리는 하필 짜증나게 더울 때 생생하게 목격했다.

산업부는 지난 10일 담당 실·국장을 소집해 전기료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는 한 달 전에 진작 열렸어야 한다. 올여름 무더위는 일찌감치 예보돼 있었다. 전기료 무서워 에어컨 못 트는 고통은 이미 7월부터 보도됐다. 산업부가 꿈쩍도 안 하는 동안 긴급 재난 문자메시지가 연일 발송되고 폭염 사상자는 1000명을 넘어섰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살인적 폭염의 고통을 미리 헤아려 장관이 먼저 대통령에게 건의했어야 마땅하다. 이번 폭염은 그럴 수 있는 사안이었다.

‘대통령 한마디’의 위력은 여러 번 확인됐다. 그 말에 국방부는 사드 제3부지를 검토했고, 환경부는 경유값 인상을 추진했고, 대구공항은 이전하게 됐다. 대통령이 한마디 했는데 되지 않은 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뿐이지 싶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뒷걸음질로 나오다 넘어진 장관도 있다”는 한국 정부의 고질적 경직성은 이 정부 들어 한층 더 심해졌다. 대통령이 말해야 움직이고 그 말은 뭐가 됐든 따르는 장관들이 무슨 창조경제를 하겠나.

정부가 내놓은 가정용 전기료 감면안은 임시방편이다. 7∼9월에만 적용되며 할인폭도 가구당 3개월간 평균 2만원에 불과하다. 최고 11.7배 폭등하는 누진제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전기료 폭탄’ 공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산업·일반·가정용 전기료 체계를 전면 재검토해 합리적 개편안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