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화창조'니선‘골짜기 세대’

입력 2016-08-12 00:14 수정 2016-08-12 01:32
한국 축구 올림픽대표팀 권창훈(오른쪽)이 10일(현지시간) 브라질 브라질리아 마네가린샤 스타디움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남자 축구 조별리그 C조 3차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두 손을 귀에 대는 세리머니를 하며 활짝 웃고 있다. 브라질리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최고의 선수 11명을 모아도 1등은 할 수 없다. 하지만 평범한 선수 11명이 하나로 뭉치면 무적의 팀이 된다.” 네덜란드가 낳고 세계가 사랑한 ‘그라운드의 혁명가’ 요한 크루이프의 명언이다.

한국 축구의 ‘골짜기 세대’가 차근차근 이를 증명하고 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출전한 ‘신태용호’가 그들이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10일(현지시간) 브라질 브라질리아 마네가린샤 스타디움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C조 3차전에서 1대 0으로 승리해 2승1무(승점 7), C조 1위로 8강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역대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가 조 1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한 건 처음이다. 멕시코는 개막 전부터 ‘우승 1순위’로 꼽히던 강팀이자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팀이다.

대표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다수가 무명이고, 국내에선 존재조차 모르던 선수도 상당하다. 그런데 이들이 서로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화합물의 분자처럼 꽉 붙어 있다. 연일 맹위를 떨치는 황희찬(20·잘츠부르크)은 2년 전 돌연 오스트리아로 갔다. 명문 구단 포항의 스카우트를 뿌리친 채 유럽 축구를 배우겠다며 밑바닥을 자초했다. 팬들은 황희찬을 향해 ‘통수황’이라고 손가락질했다. 포항이 잘 키워놨더니 뒤통수를 쳤다는 뜻이었다. 신 감독은 그런 그를 아무 편견 없이 발탁했다. 유럽 변방 리그에서 뛰던 황희찬은 그때부터 올림픽호의 ‘황금발’이 됐다. 엄청난 체력으로 그라운드를 휘젓고, 덩치 크고 태클 강한 유럽 선수에게 절대 주눅들지 않았다. 권창훈(22·수원 삼성) 역시 유망주였지 결코 스타는 아니었다. 자신의 기량을 자랑하기보다 팀에 녹아들며 ‘언성 히어로(Unsung Hero)’를 자처하는 타입이다.

신 감독은 손흥민(24·토트넘 홋스퍼), 석현준(24·포르투) 같은 유명 선수에게 ‘선발’ 자리를 주지 않는다. 팀 구성 때부터 동고동락해온 11명을 확고한 주전으로 쓰고, 와일드카드는 교체 선수로만 쓴다. 한 명의 기량이 전체의 팀워크를 대신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의 산물이다.

4년 전 올림픽 대표팀과 비교해봐도 현 대표팀의 이름과 몸값은 크게 차이가 난다. 박주영 기성용 구자철 지동원 김보경 등 이른바 ‘황금세대’들은 출전 당시 유럽 명문 구단 소속이었다.

그래서 신태용호는 스스로를 골짜기 세대라 부른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는커녕 빛도 들지 않는 골짜기에 도사리던 언더독(underdog·시합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는 선수 또는 팀)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 감독은 “8강을 넘어 4강, 아니 그 이상의 성적도 낼 수 있다”고 확신에 차 있다. 험한 대지에서 스스로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한 잡초처럼 불운과 열악한 조건을 뚫고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된 선수들을 믿어서다.


“지금도 대부분의 프로팀은 선수들이 감독을 피한다. 하지만 우리 팀에는 그런 게 없다. 하나의 팀이 될 수 있다면 감독이 아니라 그냥 형으로, 거리김 없이 다가설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신 감독이 밝히는 올림픽대표팀 운영 철학이다. 그 철학이 2연속 올림픽 8강 신화를 이미 썼고, 이제 연속 메달 획득이라는 기적을 정조준한다.

2년 전 브라질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은 1무2패로 예선 탈락했었다. 당황한 홍명보 당시 감독의 얼굴과 울기만 하던 손흥민의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바로 그때 그 팀의 슬로건 ‘원 팀, 원 스피릿, 원 골(One Team, One Spirit, One Goal)’이 이제야 리우데자네이루를 수놓고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