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탄식을 내뱉은 진종오(37)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저었다. 9번째 발이 6.6점(10.9점 만점)에 맞은 순간이었다. ‘최악의 한 발’이었다. 10일 오후 12시(현지시간) 2016 리우올림픽 사격 남자 권총 50m 결선이 열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슈팅센터. 사대에 오른 진종오는 위태로워 보였다. 한 번의 격발 실수로 최하위로 주저앉으며 탈락 위기에 몰렸다.
‘최악’이 아닌 ‘인생의 한 방’
진종오는 진종오였다. 최악의 한 발을 기어코 ‘인생의 한 방’으로 만들었다. 진종오는 10번째 발에서 9.6점을 쏘며 0.7점 차로 탈락을 모면했다. 이내 한국 사격의 ‘간판’다운 실력을 되찾았다. 연이어 표적지 한가운데를 명중시켰다. 진종오는 16번째 발에서 북한의 김성국(30)과 동률을 이루며 최소 동메달을 확보했다. 18번째 사격이 끝났을 때 서바이벌(8명이 처음 6발을 쏜 뒤 2발마다 최하위 한 명이 탈락) 방식으로 치르는 결선에는 진종오와 베트남의 ‘사격 영웅’ 호앙 쑤안 빈(42) 두 선수만 남았다. 19번째 발에서 10.0점을 쏘며 8.5점을 쏜 호앙을 1.3점 차로 따돌린 진종오는 마지막 발을 9.3점에 맞히며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193.7점으로 올림픽 신기록도 세웠다. 올림픽 사격 사상 첫 종목 3연패를 달성하며 사격 역사에 ‘진종오’ 석자를 아로새겼다. 2008 베이징올림픽, 2012 런던올림픽에 이어 금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선수 최초의 3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영광을 거머쥐었다.
진종오는 “6.6점이 오히려 정신을 깨운 인생의 한 방이었다”고 말했다. 실수의 순간, 올림픽 3연패의 무게, 한국 사격 대표팀의 부진에 따른 책임감 등 어깨를 짓누른 부담감을 내려놓고 자신의 사격을 펼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대역전극을 일궈낸 진종오는 “정신을 차리고 후회 없는 올림픽을 치르고 싶어 이를 악물고 집중했다”고 했다. 전화위복이었다.
모형 총 만들던 소년, ‘사격의 전설’로
진종오는 어린 시절 유달리 장난감 총을 좋아했다. 1995년 강원사대부고 1학년 때 처음으로 ‘진짜’ 총을 잡았다. 모형 총을 조립하는 모습을 눈여겨본 아버지 지인의 권유로 다소 늦은 나이에 사격 선수가 됐다. 사격에 입문한 지 4년 만에 문화부장관기 사격대회 2관왕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냈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물론 시련도 있었다. 고등학생 때 자전거를 타다 교통사고를 당해 왼쪽 쇄골을 다쳤다. 대학 시절엔 축구를 하다 오른쪽 어깨 골절로 철심을 박는 불운도 따랐다. 진종오는 철저한 자기관리로 시련을 극복하고 우뚝 섰다. 수술을 하면 몸의 균형이 흐트러질 수 있어 어깨에 박힌 철심도 빼지 않고 고통을 견뎌내고 있다. 진종오는 사격을 시작한 이후 21년 동안 훈련 내용을 매일 노트에 적는다. ‘영업비밀’을 탐내는 후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종오 노트’가 공개될 때까진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할 전망이다. 진종오는 2020 도쿄올림픽은 물론 그 이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아직 은퇴할 마음이 없다. 언제 그만두느냐고 물어보시는데 그건 너무 가혹하다. 가장 좋아하는 걸 관두라는 것과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최악의 실수 6.6점… ‘역전의 한방’ 되다
입력 2016-08-12 0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