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8일(현지시간) 경제공약을 발표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깨진 약속(broken promise)’이라고 비난했다. 한·미 FTA 이후 미국의 수출증대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일자리만 줄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진단은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나 무역대표부(USTR)의 평가와는 전혀 다르다.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소위 전문가들은 한·미 FTA가 발효되면 미국의 수출이 100억 달러 이상 늘고, 일자리 7만개가 창출될 것이라고 예고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라며 “수출은 별로 늘지 않은 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150억 달러 이상 증가했다. 미국인 일자리는 10만개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ITC는 지난 6월 발표한 ‘FTA의 경제적 영향에 대한 분석 보고서’에서 “한·미 FTA가 미국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며 교역수지 개선효과를 2015년 기준 157억 달러로 추정했다. 4억8000만 달러 규모의 관세절감으로 소비자 이익도 커졌다고 진단했다. USTR은 지난 3월 한·미 FTA 4주년을 맞아 양국 간 교역량 증가, 미 수출업자의 새로운 시장접근, 서비스산업 기회 확대, 미국 지적재산권 보호 기여를 성과로 꼽았다.
트럼프는 전문가들이 제시한 기본 수치도 왜곡했다. ITC는 ‘한·미 FTA가 발효되면 미국의 대한 수출이 48억 달러 늘 것으로 기대한다’는 2007년 보고서 내용을 소개했다. 트럼프가 주장한 ‘100억 달러 수출 증대’와는 거리가 멀다.
특히 서비스 부문을 포함할 경우 미국은 한국을 상대로 흑자를 보고 있는데도 트럼프는 외면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상무관실에 따르면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서비스 부문에서만 2015년 94억 달러의 흑자를 달성하는 등 2013년 이후 매년 100억 달러 안팎의 흑자를 거두고 있다.
김창규 상무관은 “한국의 대미 수입이 줄어든 것은 미국의 경기회복과 한국의 경기둔화가 맞물려 발생한 경기변동적 무역불균형 때문이지 한·미 FTA가 원인은 아니다”라며 “한국의 수출도 자동차, 금속, 농수산식품 등 대부분 한·미 FTA 비수혜 품목에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경제회복을 위해 대대적인 세금 인하를 약속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대부분 혜택은 대기업과 부자에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주요 공약은 법인세를 현행 35%에서 15% 이하로 줄이고 상속세를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개인소득세는 과세구간을 7개에서 3개로 줄이고 최상위 소득자 세율을 현행 39.6%에서 33%로 대폭 낮추는 게 골자다.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트리클 다운(Trickle Down·낙수효과) 방식의 낡은 아이디어”라며 “트럼프와 갑부 참모들이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이라고 혹평했다. 클린턴은 9일 자신의 경제공약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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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트럼프 “한·미 FTA는 깨진 약속”
입력 2016-08-10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