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세원] 먼저 된 자의 역할

입력 2016-08-02 18:57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의 양팔은 굽혀져 얼굴을 가리고 고개는 삐딱하니 엉거주춤한 자세로 저보다 덩치가 두 배쯤 큰 어른 앞에 주눅 든 모습으로 서 있었다. 어른의 손은 위협적으로 다그치듯 아이를 향해 올려져 있었다. 이미 몇 대 맞은 듯한 분위기다. 아파트 단지 작은 공터에서 본 모습이다. 가족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목소리도 그렇고 아이를 훈계한다기보다 폭력을 쓰는 듯한 분위기였다. 계속 보고 있을 수 없어 지나쳐 왔지만 길에서 손찌검당하는 아이의 참담한 심정이 전해온다.

아이들이 잘못하면 맞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어른도 있지만 손찌검당할 때 받은 모멸감은 영혼에 큰 상흔이 되어 오래 남는다는데, 부모도 누구도 남의 몸에 함부로 손대는 사람은 없어야 할 것이다. 아이의 생각과 행동이 절대로 어른과 같을 수 없는데 화가 난다고 신체적 약자를 향해 폭력을 쓰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맞은 사람보다 때린 사람의 잘못이 더 클 것이다. 폭력을 쓰기 전에 자신의 그 시절 모습을 아이에게 투영해 보는 것은 어떨지. 모든 어른은 아이들의 평생교육자이며 선도자가 되어야 한다. 자기의 잘못을 알게끔 이끌어주고 스스로 반성을 통해 변화가 일어나도록 돕는 것이 먼저 된 자의 역할 아닐까.

어른이라도 아이들의 영을 멸하는 사람도 있고 인사이트를 주는 사람도 있다. 밝은 기운과 에너지를 가진 어른이 성장과정에 있는 존재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일은 정말 가치 있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존재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무한한 가능성과 창조성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는 어른은 행운을 누리고 있는 것 아닐까. 대학 총장으로 은퇴하신 한 분은 재임 시 학생 누구에게나 늘 존댓말을 쓰셨다. 이유는 이 학생들이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로 성장할 재목인데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연약하고 크게 보이지 않아도 전 존재를 아주 존귀하고 가치 있게 본 것이다. 성장과정에 있는 존재에게 마중물 한 바가지 부어주지는 못할망정 영을 멸하는 폭력 어른은 없어야 하겠다.

김세원(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