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의 난’ 막은 터키 ‘문민 독재’로 흐르나

입력 2016-07-19 04:15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이스탄불에서 이틀 전 쿠데타 시도 때 저항하다가 숨진 자신의 지지자 장례식에 참석해 눈물을 닦고 있다. 쿠데타 실패 뒤 반대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으로 터키의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AP뉴시스

터키에서 군부 쿠데타 실패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이미 6000명이 넘는 군인과 법조인이 체포되고 8000명 넘는 경찰이 해고되는 등 숙청이 본격화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이 맨몸으로 군사 쿠데타를 막았지만 정적 제거로 의심받을 만한 광범위한 숙청작업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

쿠데타 진압을 계기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문민독재’가 가속화되는 것은 물론 엄격한 정교분리로 ‘이슬람 민주주의의 표상’으로 불리던 터키가 급격히 보수적인 이슬람주의로 기울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이스탄불 파티흐 모스크(이슬람사원)에서 열린 쿠데타 희생자 장례식에서 “암세포처럼 바이러스가 국가를 뒤덮고 있다”며 “국가기관에 확산된 바이러스를 계속 박멸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장례식에 모인 군중이 “사형제 부활”을 외치자 “민주주의에서 모든 결정은 국민의 여론에 근거한다”며 “쿠데타를 시도한 이들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사형제 부활 가능성도 거론했다. 터키는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하면서 2007년 사형제를 공식 폐지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데타가 모두 진압되기 전에도 “군을 청소할 명분이자 신이 우리에게 내리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일 ‘청소’ ‘박멸’ 등 극단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반대파나 견제세력까지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반(反)에르도안 세력이 급격히 약화될 경우 문민독재는 불가피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3년 총리에 취임한 뒤 2차례 연임했다. 총리직 4연임을 금지한 집권여당 정의개발당(AKP)의 당헌 때문에 영구집권이 어렵게 되자 그는 마지막 총리 임기 중 대통령 직선제로 헌법을 바꾼 뒤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임기가 보장된 2019년까지 집권 기간은 16년이다.

의원내각제인 터키에서 대통령은 유명무실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 이후 달라졌다. 더욱이 그는 헌법을 또 바꿔 대통령에게 권한을 집중케 할 계획이다. 이런 상황에서 군부의 쿠데타 실패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다.

쿠데타 실패 후 터키 사회는 급격하게 이슬람주의로 기울고 있다. NYT에 따르면 터키 전역의 8만5000개 모스크에서 치러진 쿠데타 희생자 추도식에서 ‘순교자를 위한 암송’이 울려 퍼졌다. 민주주의가 아닌 순교라는 명칭이 일반화된 것은 이미 많은 터키인이 정교일치의 이슬람주의에 경도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NYT는 분석했다.

1923년 건국된 터키는 건국 초기부터 헌법에 정교일치 지도자인 ‘술탄’을 배제하고 세속주의 원칙을 강조했다. 이를 바탕으로 중동과 유럽의 가교 역할을 하며 EU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반작용으로 무슬림 정체성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터키 군부는 1960년과 1980년 2차례 쿠데타로 이슬람주의로 회귀하는 집권당을 몰아내고 2∼3년 뒤 민간에 정권을 다시 이양했다. 법조계도 여기에 협력하며 세속주의를 지켰지만 군부의 잦은 정치 개입에 염증을 느낀 터키 국민이 쿠데타를 막아서면서 세속주의 세력은 사실상 설 자리를 잃었다. 이런 기류를 타고 터키가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세속주의 왕정을 무너뜨리고 신정일치 공화정을 택한 이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