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도 ‘브렉시트’… 짐 싼 잉글랜드

입력 2016-06-28 18:01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수비수 게리 케이힐(왼쪽부터)과 골키퍼 조 하트, 미드필더 델레 알리가 28일 프랑스 니스 알리안츠 리비에라에서 열린 유로 2016 16강전에서 아이슬란드에 1대2로 패배한 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있다. 아이슬란드는 사상 처음으로 8강에 진출했다. AP뉴시스
축구종주국. 국제축구평의회로 주변 연방 3개국과 함께 협회 대표자를 보내 경기의 규칙과 방법을 결정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나라. 구단 한 곳의 연간 수입 1700억원, 이적료 총액 1조7000억원, 시장가치 15조원! 세계 최대 규모의 리그를 운영하는 나라.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 출전국 중 선수 몸값이 가장 비싼 대표팀을 보유한 나라. 바로 잉글랜드 얘기다.

잉글랜드는 적어도 세계 축구계에서 자본과 권력을 모두 가진 나라다. 그런데 그런 나라가 유일하게 갖지 못한 게 바로 실력이다. 잉글랜드가 유로 2016 토너먼트 라운드 첫 판에서 탈락했다. 영국 정치·경제, 더 나아가 세계 전체를 강타한 브렉시트(Brexit)가 축구판에서도 벌어진 셈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정치·경제적 유럽연합(EU) 탈퇴가 잉글랜드 노년층과 보수층의 자발적 ‘오판’이었다면, 축구에서의 브렉시트는 형편없는 실력 때문에 강제로 쫓겨났다는 점이다. 잉글랜드 축구계에선 “브렉시트로 풍전등화에 놓인 잉글랜드의 국가 운명이 어쩜 이렇게 축구와도 닮았는지 모르겠다”는 자조마저 나온다.

잉글랜드는 28일 프랑스 니스 알리안츠 리비에라에서 열린 아이슬란드와의 16강전에서 1대 2로 졌다. 전반 3분 주장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제골로 손쉽게 승리할 듯 했지만, 2분 뒤 아이슬란드의 라그나르 시구르드손(크라스노다르), 전반 17분 콜베인 시그도르손(아약스)에게 연속 골을 얻어맞고 무너졌다.

나머지 70여분 동안 파상공세를 벌였지만, 효과는 전무했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해리 케인(토트넘 핫스퍼)은 아이슬란드의 촘촘한 협력수비에 완전히 가로막혔고, 레스터시티의 우승을 일군 스트라이커 제이미 바디(레스터시티) 역시 후반 14분 ‘해결사’ 임무를 받고 투입됐으나 무기력한 슛만 남발했다.

잉글랜드의 공격은 모두 18회. 그 중 슛은 15개지만 정작 골문으로 향한 유효 슛은 5개뿐이었다. 반면 아이슬란드는 단 8차례 공격을 모두 슛으로 사용했고, 그 중 정확히 조준한 5개의 유효 슛 중 2차례 골문을 열었다. 잉글랜드의 공 점유율 63%는 무의미했다. 아이슬란드의 압박수비와 역습이 효과적이었다.

세계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들을 소집하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로이 호지슨 감독의 허술한 전술과 부적절한 용인술은 실패의 결정적인 원인이다. 조직력을 발휘하지 못한 선수단의 부조화, 이를 만회할 수 없을 정도로 선수 각각의 미흡한 기량까지 나타났다.

잉글랜드는 이 대회에 출전한 24개국 중 선수 몸값 총액이 가장 높은 팀이다. 국제스포츠연구센터(CIES)가 집계한 출전국별 이적료 총액에서 잉글랜드는 7억5160만 유로(9737억원)를 기록했다. 7억 유로를 넘긴 유일한 팀이다.

가장 높은 케인의 이적료는 1억1250만 유로(1457억원). 라힘 스털링(맨체스터시티)은 5880만 유로(763억원), 활약에 비해 몸값이 낮은 편인 바디도 2000만 유로(259억원)를 받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오래 뛰면서 주급을 4억5000만원으로 올린 루니의 12년 전 이적료조차 1800만 유로(232억원)다.

반면 아이슬란드의 선수 몸값 총액은 7660만 유로(994억원)로 잉글랜드의 10분의 1 수준이다. 케인 한 명의 몸값보다 낮다. 출전국들 중 19위 수준이다. 인구 33만명으로 5개월짜리 세미프로 리그만 운영하는 아이슬란드에서 해외에서 뛰는 ‘진짜’ 프로선수는 고작 100명 안팎이다. 최고 몸값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거 질피 시구르드손(스완지시티)의 1640만 유로(213억원)다.

잉글랜드의 몸값 거품은 이 대회의 졸전과 브렉시트로 인한 경제적 위축으로 조만간 다 사라질 개연성이 높다. 잉글랜드를 잡고 8강행 막차에 올라탄 아이슬란드는 다음달 4일 생드니에서 개최국 프랑스와 준결승 진출권을 놓고 싸운다.

이탈리아는 이날 스페인과의 16강전에서 2대 0으로 완승했다. 이 대회에서 가장 안정적인 전력을 보유한 이탈리아는 다음달 3일 보르도에서 열리는 8강전에서 독일을 만나 또 한 번의 빅 매치를 예고했다.


[관련기사 보기]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