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제왕이라고 하면 포악한 백상아리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냥감을 가리지 않는 범고래가 여러모로 더 어울린다. 범고래의 먹이는 사는 수역에 따라 청어, 연어, 남극대구에서부터 펭귄, 참치, 바다표범과 물개, 같은 과인 돌고래, 밍크고래, 혹등고래의 새끼까지 먹이그물의 다양한 단계에 걸쳐 있다. 상어, 심지어 백상아리를 사냥하기도 한다. 주로 떼를 지어 사냥하고, 사냥 대상에 따라 포획 방법을 달리 할 정도로 머리가 좋다. 그래서 영어 명칭이 ‘사냥꾼 고래(killer whale)’다.
노르웨이와 그린란드 연안의 범고래들은 청어 떼를 포위한 뒤 물 대포를 쏘아 그들을 수면 위로 솟구치게 한 다음 입을 벌려 잡아먹는다. 다른 고래를 잡을 때는 한 조가 새끼를 어미와 떼어놓는 사이에 다른 조가 새끼를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가 질식사시킨다. 태평양연안을 회유하는 혹등고래 새끼를 사냥할 때 이런 전술을 쓴다. 물개가 올라가 있는 유빙을 향해 범고래 몇 마리가 돌진하다가 직전에서 급히 잠수하면 크게 흔들린 유빙에서 미끄러져 수면에 빠진 물개를 다음 놈이 포획한다.
고래목 참돌고래과인 범고래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정보부족종으로 등재된 국제적 보호종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범고래가 수십년 안에 멸종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취재팀이 범고래의 배에서 추출한 지방조직은 PCB, 다이옥신 등 잔류성 유기오염물질 범벅이었다. 즉 범고래의 몸은 바닷속 오염물질이 농축되어 차곡차곡 쌓이는 최종 집결지가 된다. 그들이 먹이사슬의 최상위 단계에 있기 때문에 바다오염의 최초, 최대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최근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여서도 일대에서 길이 5m로 추정되는 범고래 6마리가 무리 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위풍당당한 범고래를 멸종위기에서 구하려면 인류가 화석연료와 화학물질 중독에서 벗어나는 수 밖에 없다.임항 논설위원
[한마당-임항] 범고래
입력 2016-06-28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