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민태원] 의사양성 비용과 정부 지원

입력 2016-06-23 17:28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면 제일 처음 만나는 의사가 앳된 얼굴의 인턴, 레지던트들이다. 입원을 하더라도 교수보다는 3∼4년차 레지던트들과 주로 부대낀다. 인턴, 레지던트는 의대 졸업 후 전문의가 되기까지 교육 수련을 받는 이들로 흔히 전공의라고 불린다. 그런데 전공의들은 늘 밤샘 근무로 잠을 못 잔 듯 부스스한 표정으로 마주하기 일쑤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도 많지만 한편으론 이들에게 몸을 맡겨도 괜찮을지 살짝 불안감이 스치기도 한다.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공의들은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살인적인 환경에서 수련 받고 있다. 언어 및 신체적 폭행, 출산과 육아에 따른 불편 등 인권침해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런 예비 전문의들의 수련 환경을 고치고자 지난해 말 이른바 ‘전공의 특별법’이 제정·공포됐다. 오는 12월 23일부터 시행되는 이 법은 전공의의 주 80시간 근무와 휴일·연차·유급휴가 등 근로기준법 준용을 담고 있다.

전공의 특별법은 전공의를 근로자로 간주해 현재의 열악한 수련 환경을 개선하고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때문에 일각에선 수련시간 부족에 따른 전문의 자질 하락, 수련시간 공백을 막을 대체 인력 투입 등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문제들과 관련해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결국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법 시행 전에 심도 있는 논의와 대책 마련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전공의들이 비정상적으로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양질의 교육을 받아 좋은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은 전공의 특별법 제정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병원들은 법 시행 후에도 전공의 교육을 내실 있게 하고 양질의 전문의 양성을 위해 수련 비용의 일부 국가 지원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병원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1명을 교육시키는 데 드는 돈은 임금과 기타 비용을 포함해 약 8240만원이다. 전체 수련병원이 부담하는 비용은 연간 1조2964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따라 3500억원이 더 필요하다는 게 병원계의 입장이다. 연간 1조7000억원 정도를 병원이 전적으로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해외 선진국들도 전공의 수련비용을 일정 부분 국가에서 지원하는 추세다. 좋은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 결국 사회적으로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공의 1인당 직접 비용(급여·수당 등) 약 1억4000만원 중 20%를 공적 보험인 메디케어에서 지원한다. 영국과 캐나다도 수련 중인 의사들에 대한 교육 훈련비 일부를 국가에서 준다. 이웃 일본은 주니어 레지던트(2년) 과정 및 의대 졸업 후 3년간의 수련비용을 국가가 부담한다.

현재 전공의 특별법의 후속 법령을 준비 중인 보건복지부도 이런 해외 사례들을 살펴보고 적합한 지원 방안들을 검토해야 한다. 다만 미국처럼 전공의 인건비를 직접 국가 예산으로 지원하는 문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듯하다. 의사들의 임금을 국민 세금으로 메우는 일인 만큼 신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수련 환경 평가 등을 통해 좋은 점수를 얻은 병원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간접 지원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정부와 의료계는 향후 머리를 맞대고 생산적인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국가가 의료인 양성을 지원함으로써 의료가 공공재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점이다. 또 국가가 국민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는 인식의 변환을 끌어낼 수 있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