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영길 <9> 주일마다 전국 교회·단체 찾아가 창조론 강연

입력 2016-06-22 21:11
김영길 장로(왼쪽)가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온누리교회에서 열린 한국창조과학회 35주년 기념 국제창조과학회 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다. 김 장로는 한국창조과학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1980년 한국대학생선교회(CCC) 회관에서 역사적인 세미나를 가진 후, 20여명의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모여 정식으로 한국창조과학회를 발족시켰다. 1981년 1월이었다. 창조과학회의 목적은 진화론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과학적 증거들을 알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초기엔 회원들이 전국에 강연을 다녔다. 어느 해 총신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학생 전도사가 강의를 요청해왔다. “김 박사님,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라도 오실 수 있나요?” 나는 “시간이 허락되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답했다. 그의 요청으로 시골 교회를 찾아갔다. 경기도 파주 국도에서 벗어나 비포장도로를 꼬불꼬불 한참을 달렸다. 보이는 것은 초가집들과 몇 채의 전통 가옥뿐, 교회 건물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드디어 동네 한가운데에 십자가가 달린 작은 집이 보였다. 강의하기로 약속했던 그 교회였다.

방에 들어서니 할머니 대여섯 분과 초등학생 몇 명이 고작이었다. 세미나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대신 예수님을 믿게 된 간증을 했다. 전도사님은 “강의 후에 할머니 한 분이 박사님을 꼭 뵙고 싶다고 하시니 만나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간증을 마치자 할머니 한 분이 내 손을 잡더니 속바지 주머니에서 1000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내 손에 꼭 쥐어 주었다.

“시골까지 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내가 몇 달 전부터 기도로 이 사례금을 준비했으니 꼭 받아 가셔야 합니다.”

사양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많은 강연을 다녀봤지만 이처럼 정성과 감동이 가득 담긴 사례금은 처음이었다. 나는 파주에 다녀온 후 창조과학회 임원들에게 제안했다.

“이제부터 강연회에 몇 명이 참석했는지 보고하지 맙시다. 아무리 작은 모임이라도 그 중에 구원받을 영혼이 있을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을 위해 우리가 도구로 쓰임 받는 것에 만족합시다. 하나님의 관심은 숫자에 있지 않고 그 분이 찾으시는 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주일마다 여러 교회와 단체, 그리고 대학 축제 주최 측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창조론 강연은 비기독교인들에겐 도전과 충격을, 기독교인들에겐 믿음의 확신을 주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

나는 모인 사람이 소수든 몇천명이든 열정을 담아 강의했다. 세례요한처럼 모양도 없고 형체도 없이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명을 다하고 사라지는 ‘소리’로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을 늘 감사드린다.

한국창조과학회는 중·고등학교 생물 교과서에 진화론과 함께 창조론도 수록하도록 교과서 개정 운동을 펼쳤다. 89년 1·2차 심사에서는 통과했지만, 3차에서 통과하지 못해 고등학교 교과서 수정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자유롭게 교재 선택이 가능했기에 90년 5월 창조과학회 교수들이 각자의 전공분야별로 집필한 자연과학개론 교재를 출간했다. 이 책은 일부 기독교대학에서 사용하고 있다. 한동대에서는 95년부터 모든 학생들이 ‘창조와 진화’ 과목을 필수로 배우고 있다. 올해로 설립 35주년을 맞은 한국창조과학회는 회원 수 800여명 규모로 성장했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