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자연과 관광화된 섬의 이중성,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 여백을 살렸다

입력 2016-06-20 21:52
김성호 작가의 최근작 ‘새벽-성산일출봉’. 제주 새벽 바다에 비친 불빛을 서정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색채로 붓질했다. 선화랑 제공

도심의 새벽 불빛을 강렬한 색채로 붓질하는 ‘빛의 작가’ 김성호(54)는 2014년 제주도로 작업실을 옮겼다. 그림이 비교적 잘 팔리는 인기작가로 휘황찬란하면서도 어슴푸레한 도시 불빛에 몰두하다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고심하다 지인의 소개로 제주도에 터를 잡았다. 작업 소재는 새벽의 불빛이라는 점에서 이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성산일출봉’ ‘산방산’ ‘서귀포항’ 등 제주 앞바다에 비치는 불빛을 화면에 옮긴 것 역시 서울 한강 또는 부산 해운대의 새벽 풍경을 그린 이전 작품과 비슷하다. 하지만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새벽의 여명과 가로등 불빛에 흔들리는 거리의 모습 대신 인공적인 조형물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풍광이 화면에 자리 잡은 것이다.

그가 2년여 동안 제주에서 생활하며 그린 작품 30여점을 ‘섬 불빛 바다, 그리운 제주’라는 타이틀로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선보인다. 작가는 “제주는 풍경에 집중할 수 있어서 매력적”이라며 “도시 이미지를 빼고 자연의 모습을 제 자신만의 색채와 구도로 담백하게 담아내고자 하는 새로운 작업의 첫걸음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구상미술이 강세를 보이는 대구 출신인 작가는 초기 작업부터 삶과 밀접한 일상 풍경을 감각적인 터치로 그렸다. 특히 여명이 움트기 전 불빛과 파란 하늘의 대비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파란색에서 회색, 노랑, 녹색 등 원색으로 눈부신 불빛을 그려내는 방식이 이색적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군더더기 없이 단순해졌다. 동양화의 여백을 되살린 그림이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제주의 소리와 애환이 들리는 것 같다. 천혜의 자연을 보여주는 것과 함께 자본의 유입으로 관광화될 수밖에 없는 섬의 이중성도 담았다. 원경·중경·근경의 구도로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시점, 넓은 화면 대부분을 과감히 어둠으로 처리한 게 특징이다. 오랫동안 삶을 영위한 사람들의 그리움이 깃든 제주의 땅을 그만의 필치로 재탄생시켰다(02-734-0458).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