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에서든 상위 10%에 들어본 적이 있던가? 책을 산다면 당신은 ‘그 책을 산’ 대한민국 1% 안에 들어간다. 대한민국 1%라면 50만명이고, 요즘 50만부 이상 팔리는 책은 극히 드물다. 저자들에게 꿈의 숫자라는 100만부라고 해봐야 그 책을 산 사람은 대한민국 2%에 불과한 셈이다. 대다수 책이 초판 2000∼3000부에 그친다. 그 책을 산 사람이라면 0.05%에 든다. 한 후배가 국내에 번역된 밀란 쿤데라의 책을 전부 읽었다고 페이스북에 써놓은 걸 봤다. 밤에 할 일이 없어서 괜한 짓을 했다면서. “대단하다”고 댓글을 달았다. 우리나라에서 쿤데라의 책을 다 읽은 사람은 도대체 몇 퍼센트나 될까. 그러니까 어떤 책을 산다는 것, 어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꽤나 특별한 일이다. ‘대한민국 1%가 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며 농담으로 가끔씩 하는 얘기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어차피 마이너리티다. 최근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는 ‘5%’ 얘기가 나온다. 무라카미는 “습관적이고 적극적으로 문예 서적을 읽는 층”을 일본 전체 인구의 5%쯤으로 추정하면서, 일본 전체 인구의 5%라고 하면 600만명 정도 규모이고 “그만한 시장이라면 작가로서 어떻든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 5% 전후의 사람들은 “설령 ‘책을 읽지 마라’고 위에서 강제로 막는 일이 있더라도 아마 어떤 형태로든 계속 책을 읽을 것”이고, “가까이에 유튜브가 있건 3D 비디오게임이 있건, 틈만 나면(혹은 틈이 나지 않더라도) 자진해서 책을 손에 든다”면서 “그런 사람들이 스무 명에 한 명이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책이나 소설의 미래에 대해 내가 심각하게 염려할 일은 없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무라카미가 말한 5%가 바로 이들이 아닐까 싶은 사람들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앞 땡스북스에 모였다. 서점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서점을 창업해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만나 대화하는 자리였다. 흥미로웠던 건 그들 중 누구도 서점의 성공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치 그건 관심이 아니라는 듯이, 혹은 안 망할 순 없다는 듯이.
독립출판물을 취급하는 서점 유어마인드의 이로 대표는 “서점은 피난처”라면서 “도심의 주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갈 곳이 없어서 작은 서점으로 피난을 와서 비슷한 사람들을 만난다”고 말했다. 근래 생겨난 서점 중 가장 성공한 경우로 꼽히기도 하는 땡스북스의 이기섭 대표는 “서점이 생계는 되지 않는다”면서 “제 개인 서재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동네책방을 열었다”고 말했다.
피난처로, 개인 서재로, 망할 게 뻔하지만 어쨌든 시작한 서점들. 그들을 따라 전국에 수많은 서점들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책이 안 팔린다는 시대에 서점 창업이 붐을 이루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책 안 읽는 95%를 탓하는 대신 5%의 책 읽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쓴다는 무라카미는 일본을 넘어 세계문학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어차피 마이너리티라는 인식, 노력은 해보겠지만 아마 잘 안 될 거야 하는 태도, 돈은 조금 벌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 성공을 기준으로 모든 가치를 판정해온 한국 사회가 내쳐버린 이런 마음들이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 의해 새로 발견되고 있다. 이런 흐름들이 압축성장 과정에서 결락된 이 사회의 다양성을 채워주고 불황의 시기를 건너는 길을 내주고 있는 건 아닐까.
김남중 문화팀 차장 njkim@kmib.co.kr
[세상만사-김남중] “아마 잘 안 될 거야”
입력 2016-06-16 1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