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초에 정월 대보름을 맞았다. 달맞이 객들은 달의 크기와 밝기에 감탄을 자아내며 노랗게 들뜬 마음들로 어우러져 민족의 흥을 즐겼다. 팔월 한가위만큼이나 환한 달이고 사물의 그림자 또한 그만큼 짙은 밤이다.
우리 민족은 태양 빛 아래에서 탐관오리의 수탈과 외세에 쫓기는 삶을 적지 않게 살았다. 우리 역사에서도 한낮의 태양은 생기와 활력을 상징하지만 고단하고 쫓기는 삶도 떠올리게 되는 이유이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삶이 궁핍하고 초라해도 소반에 숟가락 하나 더 얹어 십시일반 나그네와 함께 나누는 인심과 여유를 잃지 않았다. 갖은 나물과 부럼을 맛보는 정월대보름에 이웃 간 나눔은 풍성했다.
반세기가 넘도록 보름달마냥 맑고 환하게, 초승달처럼 예리하고 깊숙이 세계의 본질을 밝히고 창조적 사고와 실재가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우리 시대의 석학이 이어령(1934∼) 선생이다. 이 선생에게도 선생을 대표하는 작품들과 이에 가려진 글들이 있는데 ‘둥지 속의 날개’는 그 조영 속에서도 영롱한 빛을 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 독고윤은 카피라이터다. 직원들의 피를 빨아 먹으려 드는 광고 회사 사장 밑에서 일한다. 돈의 노예가 되어 탐욕에 찬 사장, 대화라곤 음담패설 일색인 직장 동료들, 과거 초등학교 시절 선망하던 여선생을 욕보인 ‘맹 선생 사건’, 정신지체아를 낳은 아내와 아들에 대한 죄책감 등으로 독고윤은 날개를 접고 둥지 속에 웅크린 새처럼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에게도 카피라이터로서의 한방이 있었다. 사장의 입장에서 무리한 시도로 여겨지는 광고문구가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자신이 냈던 사표는 반려되고 오히려 능력 있는 직원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 덕에 특별휴가로 부산여행을 떠난다. 그는 기차 안 자기 좌석 옆에 앉은 한 젊은 여자와 우연히 대화한다.
둘은 부산여행 이후로도 계속 만나지만 ‘끈적한 불륜 사이’가 아닌 ‘은근스레 썸(Some, 연애를 시작하기 전 미묘한 관계)을 타는 관계’를 유지한다. 소박한 꿈과 고달픈 현실의 간극에서 갈등하며 심적 전쟁을 치루는 독고윤의 정처 없는 의식 세계가 작품의 모든 사건에 점철되어 있다.
소설 전반부까지 주인공을 둘러싼 일련의 문제들은 이야기의 중후반부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여정으로 들어간다. 총체적 난국의 자연스런 결과인지, 독고윤과 그의 아내 김수련 사이에는 얇은 막이 가로막는다. 둘만의 깊은 교감은 매번 실패로 끝나게 된다. 그는 점점 파국으로 가는 듯한 갈등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마침내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해내는 대중소설의 이야기답게 독고윤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달그림자에 가려진 둥지 속 이야기가 밝혀질 때이다.
5000년 역사를 하루로 계산하면 핍절하고 찢긴 우리 역사에 물질적 풍요를 누린 시간은 고작 몇 분이 될까? 일제 강점기와 6·25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초토화된 대한민국에 하나님은 구원의 축복과 함께 엄청난 부를 쏟아 주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구약 이스라엘과 서방 선진국의 전철을 밟으며 물질의 축복을 탐심과 무절제로 바꾸고 결국에는 하나님을 떠나는 죄를 짓고 있다. 그 결과 안에서는 ‘헬조선’, 밖에서는 핵과 열강들의 위협이라는 상황에 이르러 구약 이스라엘 사사 시대와 같아졌다.
우리는 ‘둥지 속의 날개’에서 주인공의 적대자들처럼 탐욕스럽게 물질을 추구해 재물도 잃고 정신도 피폐해지지 말자. 둥지 속에 갇힌 우리 민족이 날개를 펴고 비상하기 위해 조국 교회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달밤에 취한 몽상이 아닌,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달빛 아래 어둠 속에게 은밀히 기도하고 태양빛 찬란하게 소망을 이루어내자. 지금은 하나님 주신 물질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며 성경을 따라 살아야 할 때이다. 임춘택(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임춘택의 문학과 영성] 탐욕을 걷어내고 두둥실 비상하자
입력 2016-02-26 1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