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암덩어리”“팔자”… 개혁과의 씨름

입력 2014-12-29 03:08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2년차인 2014년 세월호 참사와 여야의 극한 대치,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등으로 어느 때보다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가시적인 성과물을 보여줘야 할 2년차에 예기치 못한 대형 참사와 악재를 만났던 만큼 연말을 맞는 박 대통령의 심경은 복잡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올해 자신의 절박함을 여러 회의 때마다 그대로 표출했다. 주로 정제된 표현을 썼지만, 국정과제 이행을 독려할 때만큼은 자극적이고 거친 수사(修辭)를 행했다. 박 대통령은 새해 벽두부터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꺼내들면서 그중 핵심을 ‘규제개혁’으로 규정했다. 일각에서 섬뜩하다고 느낄 정도로 강도 높은 표현을 한 것은 대부분 규제 개혁을 언급할 때였다.

지난 2월 청와대에서 첫 정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진돗개 정신’을 언급했다. “한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 진돗개 정신으로 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이어 “(정부제출 법안들이) 300일을 묵히고 퉁퉁 불어터진 국수처럼 되면 효과가 없다”고도 했다.

더 자극적인 표현도 많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선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라며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이 죽는 암 덩어리로 생각하라”고 했다. 같은 달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도 “규제는 사생결단을 하고 붙어야 한다. 규제를 쉽게 생각하고 던져놓는데, 개구리는 거기서 맞아 죽을 수 있다”고 했다.

8월엔 “우리끼리 지지고 볶고 하면서 정체돼 있다면 10년, 20년 후엔 설 땅이 없다”고도 했다. 11월 국무회의에서도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는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서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개혁동력이 아직 남아있을 때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28일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확대 등 경제 활성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이를 가로막는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 판단한 것 아니겠느냐”고 부연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실제로 대통령이 올해 각종 회의를 주재할 때마다 규제 개혁 및 경제 살리기에 관한 언급은 거의 빠진 적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절실함은 지난 22일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도 잘 나타난다. 박 대통령은 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 공공개혁 등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각종 개혁과제를 열거하면서 “역대 정부가 하다하다 힘들어 팽개치고, 꼬이고 꼬여서 내버려둔 과제들이 전부 눈앞에 쌓였다”며 “이를 해결하는 게 우리 사명이자 운명이고 팔자”라고 했다. 집권 2년차의 주요 고비마다 악재에 번번이 발목을 잡혀왔던 만큼 이에 대한 답답함의 표현으로 읽힌다.

박 대통령의 강도 높은 표현들은 메시지를 국민과 공직자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일각에선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는 표현이 반복되다 보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대국민담회를 통해 비정상의 정상화, 사회 적폐 및 부정부패 척결, 국가대혁신 등을 거듭 언급했다. 그러면서 “우리 공직사회는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무사안일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문제가 되고 있는 관피아(관료+마피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공직사회와 공직자를 포용하지 않고, ‘관피아’라며 개혁과 철폐의 대상으로만 삼는 게 적절하냐는 비판이 나왔다.

박 대통령은 자신 및 측근과 관련된 의혹과 야당의 공세가 이어질 때도 정면으로 강력 대응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의 이른바 ‘7시간 행적’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공격이 이어지자, 지난 9월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 이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경고했다. 또 정윤회씨 동향 문건이 계속 불거지던 지난 7일에도 “찌라시에나 나오는 얘기에 나라가 흔들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 “나는 흔들릴 이유도 없고 절대로 흔들리지 않겠다”고 의혹을 일축한 바 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