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금융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등기임원 임명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금융 당국이 추진한 지배구조 모범규준이 재계의 강한 반발에 밀려 후퇴했다. 당초 자산 2조원 이상 모든 금융사에 적용키로 했던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 신설 규정에 증권사와 보험사 등 제2금융권이 제외되면서 적용 대상이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금융권에 신규 임명된 사외이사 10명 중 4명은 관료 출신으로 집계돼 ‘관피아’가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원회는 24일 정례 회의를 열고 지난달 20일 입법예고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 수정안을 상정해 최종 확정했다. 금융위는 수정안에서 임추위 신설과 관련해 “은행지주회사와 은행부터 시행하되 제2금융권에는 은행지주와 은행의 제도 정착을 봐가며 중장기적으로 적용하겠다”고 설명했다. 당초 118개 금융사가 적용 대상이었지만 제2금융권을 제외하면 은행지주와 은행 29개사만 적용받는다. 다만 CEO 승계 프로그램과 운용의 경우 원안대로 모든 금융회사에 적용된다. 하지만 제2금융권이 임추위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금융위가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의 동력을 스스로 갉아먹은 셈이 됐다.
금융위가 임추위 관련 규정을 대폭 완화한 것은 삼성, 한화 등 다수의 금융 계열사를 둔 대기업들이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임추위가 의무화되면 그룹 총수의 인사권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지배구조 모범규준은 상위법의 법적 근거도 없이 금융사의 경영권을 제약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모범규준 수정안에서는 은행지주와 은행 사외이사 임기도 현행 2년으로 유지됐다. 금융위는 사외이사 임기를 1년으로 줄이려 했지만 지나치게 짧은 임기가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해친다는 반발 여론을 수용했다.
박근혜정부가 ‘관피아’ 척결 의지를 보였지만 관료 출신 사외이사 비중은 여전히 높았다. 올 3분기 말 사외이사 현황을 조사한 결과 올해 신규 선임된 120명의 사외이사 중 관료 출신은 47명(39.2%)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학계(25.8%) 재계(20%) 언론(9.2%) 순이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금융사 지배구조 모범규준… 재계 입김에 후퇴
입력 2014-12-25 0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