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로 檢앞에 선 ‘땅콩회항’

입력 2014-12-18 03:04
'땅콩 회항' 사건 조사를 받기 위해 17일 서울서부지검에 출두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취재진 앞에 서서 고개 숙여 인사하는 동안 눈가에 맺혔던 눈물이 콧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조 전 부사장은 쏟아지는 질문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김지훈 기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17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지난 5일(미국 현지시간) 뉴욕발 대한항공기가 ‘땅콩 회항’을 한 지 12일 만이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근수)는 참여연대·국토교통부가 항공법·항공보안법 위반 및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한 조 전 부사장을 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오후 1시50분쯤 검찰청에 도착한 조 전 부사장은 서창희 변호사와 함께 승용차에서 내려 취재진 앞에 섰다. 목도리만 흰색과 회색이 섞여 있을 뿐 코트 바지 단화 가방을 모두 검은색으로 맞춘 차림이었다. 당황한 듯 포토라인을 찾지 못해 정면이 아닌 측면을 보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기도 했다.

조 전 부사장은 승무원 폭행을 인정하느냐, 회항과 허위 진술을 지시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과가 늦어진 이유와 검찰 수사에 임하는 심경을 묻자 ‘죄송합니다’ 하는 입 모양을 보였지만 목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푹 숙인 고개 아래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가 콧등을 타고 떨어졌다. 10여분간 쏟아진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변호사와 함께 청사로 들어갔다.

조 전 부사장 형사처벌 수위는 승무원에 대한 폭행·폭언 혐의와 활주로로 향하던 항공기를 되돌린(램프 리턴) 혐의의 입증 여부에 달려 있다. 사무장을 밀치고 손등을 파일로 친 혐의가 인정될 경우 항공보안법 46조(항공기 안전운항 저해 폭행죄)로 5년 이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사실상 램프 리턴을 지시했다고 입증되면 항공보안법 제42조(항공기 항로 변경죄)에 따라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형을 받게 된다. 조 전 부사장은 국토부 조사에서 폭행 혐의를 부인했다. 램프 리턴에 대해선 사무장을 향해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했을 뿐 “비행기를 돌리라”고 지시하진 않았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울 경우 형법상 폭행죄나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폭행이 안전운항을 저해했는지, 항로 변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입증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국토부 조사에선 이 부분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특별법인 항공보안법이 아닌 형법으로 기소할 경우 처벌 강도가 약해진다. 형법상 폭행 또는 협박으로 권리 행사를 방해하면 5년 이하 징역, 위력으로 업무를 방해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항공법 전문가는 “국민적 분노는 크지만 사안마다 항공보안법을 적용하기 까다로운 부분이 있고 사실상 판례도 없는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측이 사무장과 승무원을 협박·회유하는 과정에 조 전 부사장이 가담했는지도 검찰이 밝혀야 할 부분이다. 검찰은 ‘증거 인멸’ 개입 여부를 판단해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대한항공조종사노조는 지난 15일 CIRP(위기대응)팀을 구성해 ‘땅콩 회항’ 항공기에 탔던 조종사 4명(기장 2명, 부기장 2명)을 모처로 옮겨 심리적 안정을 찾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이날 밝혔다. CIRP는 대형 사고로 정신적 충격을 입은 조종사를 위한 프로그램인데, 이를 땅콩 회항 사건에 적용한 것이다.

전수민 임지훈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