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日 아베 총리가 역내 지도자로 인정받으려면

입력 2014-12-16 02:28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4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전체 475석 가운데 3분의 2를 넘는 325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둔 직후 세 가지를 언급했다. 최우선 국정과제는 경제이며,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법률을 정비하고, 전쟁을 금지한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아베노믹스는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이었던 만큼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은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며, 우경화 행보도 빨라질 것임을 시사한다.

우려스러운 점은 후자다. 이번 선거로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한 아베 총리는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만들어진 일본의 헌법을 바꾸겠다는 등 전후체제 탈피를 누차 강조해 왔다. 개헌을 위한 국민운동을 전개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전쟁할 수 없는 나라’에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나아가겠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과거사를 직시하고, 진정성을 갖고 사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일제(日帝) 침탈의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동북아 국가들을 안심시킬 수 있으며, 일본의 군사력 확대에 반대할 명분도 약해지게 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베 총리는 역주행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며,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을 시인하고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를 훼손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도 참배했다. 국내 우파 지지층을 다지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되지만 같은 패전국인 독일의 전후(戰後) 행보와 너무 대조적이어서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아왔다.

아베 총리는 선거가 끝난 뒤 종전 70주년인 내년 일본 패전일 즈음에 발표할 담화와 관련해 “과거의 전쟁에 대한 반성, 전후의 행보, 일본이 이제부터 어떤 길을 갈 것인지를 담고 싶다”는 말도 했다. ‘과거의 전쟁에 대한 반성’이란 부분이 주목된다. 어떻게 구체화돼야 하는지 큰 방향은 명확하다. 가해(加害)의 역사를 결코 잊지 않겠다는 점을 대내외에 천명해야 한다. 무라야마 도이미치 전 일본 총리가 발언한 대로 전쟁에 대한 반성과 과거에 대한 청산 없이는 평화주의를 표방할 수 없다.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 되는 내년에 한·일 관계 개선이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가 될 것이라면서 우회적으로 아베 총리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했다. 아베 총리가 종전의 퇴행적 역사인식을 과감히 털어버리고 새롭게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그것만이 동북아 평화를 담보하고, 아베 총리가 역내 지도자로 인정받고, 일본이 국제사회로부터 명실상부한 대국(大國)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