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빠르게 하락하면서 원유 수입국인 한국 입장에선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만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유가 급락이 저물가를 부추길 수 있고, 일부 업계에 큰 타격이 우려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국제유가 하락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국제 유가가 10% 떨어질 경우 국내총생산(GDP)은 0.27%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소비(0.68%) 기업투자(0.02%) 수출(1.19%)이 동시에 늘면서 경제 사정이 나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도 유가 하락이 당분간 지속돼 20%까지 인하될 경우 한국과 같은 신흥국들의 GDP가 1% 오를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다만 1%대 저물가가 2년째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가 하락이 저물가 우려를 부채질할 수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정민 선임연구원은 “물가 하락 현상이 지속되면서 저물가를 고착화할 우려도 있다”며 “유가 하락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를 기업의 연구·개발(R&D)이나 인적자원 개발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유가 급락으로 국내 산업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대표적 피해 업종은 정유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의 지난 3분기 총 영업이익은 340억원에 불과했다. 전체 매출 38조7262억원의 0.1%에도 못 미치는 숫자다. 정유사들이 도입한 원유 가격은 비쌌는데 유가가 내려가면서 재고 가치가 그만큼 하락해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한 수익 감소가 불가피해 보인다”며 “당초 사업계획에서도 유가 전망을 최대한 비관적으로 설정했는데 사업계획을 또 수정해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태양광 등 대체에너지 산업도 비상등이 켜졌다. 석유 가격이 비싸야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온실가스 감축 이슈 등으로 각 정부가 대체에너지 사용을 늘리고 있어 큰 피해는 막고 있는 상황이다. 해양플랜트 업계도 유가가 하락하면 시추, 생산설비가 줄기 때문에 이 상황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자동차 업계는 통상 기름값이 싸질 경우 차 수요가 늘면서 이익을 얻지만 최근 경기 위축으로 인해 유가 하락이 차 구매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유가 하락이 가장 반가운 곳은 항공·해운업계다. 운영 원가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유류비를 아끼면서 수익성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대한항공의 지난해 유류소모량은 3117만 배럴인데 유가가 10달러 떨어질 때마다 연간 3254억원을 아낄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3분기 대한항공은 전년 동기보다 987억원의 유류비를 절감했다. 해운업계도 유가 하락을 반기긴 마찬가지다. 선대운영 비용에서 유류비 비중은 20% 정도였지만 최근 17∼18%대까지 떨어졌다.
세종=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저유가·엔저 파장] 소비·투자 긍정적… 저물가 부추길 우려도
입력 2014-12-08 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