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아들 이름을 조지프 정(Joseph Chung·한국명 정홍렬)이라고 지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애굽의 총리가 된 성경 속 요셉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다. 짙은 눈썹에 서글서글한 눈매, 부드러운 입술과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닌 조지프는 내 아들이지만 정말 사랑스러웠다.
아기와 눈 맞추고 웃거나, 조그맣고 통통한 볼에 얼굴을 부빌 때의 뭉클한 기분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느 가정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감격과 감탄의 연속만은 아니었다. 특히 첫아이를 키운다는 건 낯선 이국땅에서 생활하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밤낮을 가리지 못하는 아이의 잠을 재우는 것도 힘들었고 또래보다 부산스러워 보이는 아이에게 차분히 뭔가를 가르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조지프는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정리된 물건을 깨뜨리기 일쑤였다. 아이에게서 눈을 뗐다가는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런 아이를 보고 “제 아빠 닮아서 그래. 애비도 어릴 때 꽤나 부산스러웠지” 하시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다.
둘째 홍민(미국명 사무엘)이가 연년생으로 태어났다. 첫째가 태어난 지 1년 반 만에 태어난 둘째까지 돌보느라 그야말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한꺼번에 두 아들을 돌보기 힘들어 첫아들 조지프를 반나절 동안 돌봐주는 프리스쿨(유치원)에 등록시켰다. 그런데 하루는 그곳 선생님이 내게 이런 말을 해왔다.
“조지프가 좀 이상해요.”
“네? 조지프가 이상하다고요? 뭐가요?”
당시만 해도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노골적이던 때라 조지프가 혹시 동양인이란 이유로 차별당하는 건 아닌지 염려됐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유치원으로도 옮겨봤지만 조지프가 이상하다는 말을 듣기는 마찬가지였다. 병원을 수소문해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아이에게 자폐 성향이 있습니다.”
“자폐요? 그게 뭐예요?”
1984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일이다. 조지프를 이리저리 진단하던 의사가 자폐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게 무슨 병인가 싶었다. 병이라면 빨리 고쳐야 할 텐데, 그럼 고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만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러면 뇌수술을 하면 되는 것인가요?”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그렇게 의사에게 반복해서 되물었다. 하지만 의사에게서 돌아오는 답은 “수술로 해결되는 병이 아닙니다”라는 말뿐이었다. 또 별다른 치료 방법도 없다고 했다. 의사의 말에 나는 기가 막혔다. 세상에 치료 방법이 없는 병이 있나 싶었고, 내 아들에게 왜 그런 병이 찾아왔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는 내게 의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줬다.
“좋은 특수교육 선생님을 찾아보십시오. 이런 아이에겐 약물이나 수술보다 좋은 교육으로 접근하는 것이 예후가 좋습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좋은 선생님을 찾아보라는 의사의 권유를 떠올려 보니 더욱 막막했다.
‘왜, 무엇 때문에 우리 집안에 저런 아이가 태어났을까. 왜 아무런 대책도 없고 치료 방법도 없는 아이가 내게서 태어난 걸까.’
그간 조지프를 보며 단 한 번도 가져보지 않았던 의문들이 떠오르면서 아들을 보는 내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 빛나 보였던 조지프의 얼굴 위로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 듯했다. 방에 몸져누웠다. 나중엔 거동조차 힘들어 자꾸만 비틀거릴 정도였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역경의 열매] 정성자 (4) “요셉처럼 돼라” 이름 지은 조지프가 자폐라니요?
입력 2014-11-27 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