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성도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첫째, 삶의 방향이 하늘로 향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성도는 삶의 방향이 땅에서 하늘로 바뀌었습니다(고후 5:15∼16).
낙수가 바위를 뚫는 것은 물방울의 힘 때문이 아니라 물방울의 횟수 때문입니다. 성도는 물방울의 힘이 아니라 물방울의 횟수로 승부를 보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에다 물방울을 떨어뜨려야 할까요. 우선 가족과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열방의 제사장으로 세우시려고(출 19:5∼6)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와 자녀와 가족이 여호와의 도를 행하게 하셨습니다(창 18:19). 아브라함이 평생 한 일은 이삭과 야곱을 장막 안에서 제자로 삼는 것이었습니다(히 11:9).
오늘날 가족 해체와 함께 신앙 해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자녀를 제자 삼는 사명이 수능과 취업, 결혼, 여가생활 등을 이유로 약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성경도 모르는 자녀는 성인이 돼 대부분 교회를 떠납니다. 자녀가 부모의 제자가 되지 않아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를 학교나 학원에 맡기지 않으시고 부모에게 맡기셨습니다. 자녀를 남에게 맡길 때부터 부모는 유모로 전락합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것은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마음이어야 합니다(마 10:16). 지금은 삶의 방향을 하늘로 바꾸어 자녀를 제자로 삼아야 할 때입니다. 이 사명을 회복할 때 비로소 가정부터 천국이 될 것입니다.
둘째, 생각의 방향이 하늘로 향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늘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삶의 방향을 하늘로 바꾸려면 의지적으로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땅의 생각)은 사망이고, 영의 생각(하늘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기 때문입니다(롬 8:6).
나를 생각하면 약해지고 남을 생각해도 약해집니다. 즉 인간 생각의 방향이 본능적으로 사람, 즉 자신이나 남에게 향합니다. 그것은 비교의식을 낳고 결국 불행을 낳습니다. 성도는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할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연극 1막과 2막 사이에 불이 꺼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왜 불이 꺼질까요. 옷을 갈아입으라는 뜻입니다. 1막 때 입은 옷을 2막 때 입고 등장하면 좀 어색하겠지요. 때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생각의 옷을 갈아입으라는 하나님의 사인입니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습니다. 어제의 만나가 오늘의 양식이 될 수 없듯이 지나간 생각으로는 지금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골리앗은 기골이 장대해 물리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소년 다윗은 ‘덩치가 크니까 맞추기 쉽겠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의 갈아입은 생각이 그에게 용기와 확신, 그리고 위대한 승리를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생각을 도배하십시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올 것입니다(약 1:17). 무궁할 뿐만 아니라 아침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긍휼히 품어주실 것입니다(애 3:22∼23).
박종범 목사(경산자인교회)
[오늘의 설교]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
입력 2014-11-26 02:15